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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직격탄 vs. 의무수입 부담..쌀 관세화 유예 ‘딜레마’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20 18:01

수정 2014.06.20 18:01

농민 직격탄 vs. 의무수입 부담..쌀 관세화 유예 ‘딜레마’


대한민국 쌀이 관세화 여부를 놓고 갈림길에 서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국내 쌀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취한 20년간의 관세화 유예 종료시점이 올해 말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쌀 관세화를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세화를 또다시 한시적으로 유예할 경우 저율관세할당(TRQ)을 통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이 크게 늘어 국내 쌀시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농민들은 쌀 관세화를 적극 반대하고 있다. 관세화를 통해 외국 쌀 수입문을 크게 열어줄 경우 국내 쌀시장 자체가 무너지고 그 피해가 농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주요 쟁점은

현재 최대 쟁점은 쌀에 관세를 적용(관세화)한 뒤 시장에 맡겨두느냐, 아니면 웨이버(의무면제)를 신청해 일시적으로 관세화 유예를 재연장하느냐다. 쌀을 관세화한다는 것은 쌀에 대해서도 다른 수입품목과 같이 관세를 책정하고 관세를 납부하면 누구나 수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연다는 뜻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율을 설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나라는 1986~1994년 UR협상에서 당시 수입하던 모든 농산물에 대해 관세화하기로 합의한 뒤 쌀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관세화를 10년씩 두 차례 유예해 왔다. 그 대신 1995년부터 올해까지 TRQ를 설정, 매년 일정량씩 수입을 늘려왔다.

TRQ 설정에 따른 쌀 의무수입물량은 1995년 당시 국내 소비량의 1%인 5만1000t에서 2004년 20만5000t으로 늘었고, 올해는 국내 소비량의 8%인 40만9000t으로 증가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송주호 연구원은 "10년 전인 2004년 당시 쌀 관세화 유예연장 협상으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TRQ 의무수입량의 98.6%가 수입됐다"면서 "밥용의 경우 나라별 쿼터 안에서 미국산과 중국산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낙찰가격은 국내산 쌀 값과 비교할 때 평균 67%였다"고 분석했다.

나라별 수입량은 중국(50%), 미국(28%), 태국(15%), 베트남(2.9%), 인도(1.5%), 호주(1.5%)순으로 많았다.

송 연구원은 "수입쌀은 국내산 쌀 가격의 3분의 1부터 3분 2 수준에서 싸게 팔리고 있지만 선호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2005~2013년 TRQ 운용 결과 관세율을 380% 이상 부과했다면 TRQ를 초과하는 수입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여론과 농민단체의 반대로 관세화를 10년간 유예하지 않았더라면 TRQ를 40만9000t이 아닌 2004년 당시의 20만5000t으로 묶어두고 추가 수입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두 번 유예를 통해 2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관세화를 선언하거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웨이버를 신청해 한시적으로라도 몇 년을 더 연장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송 연구원은 "우리나라도 현 시점에서 관세화를 선택한다면 국내 쌀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고율관세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국제 쌀값이 t당 600달러, 달러당 환율이 1000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쌀 수입단가(운임 및 보험료 포함 인도가격)는 t당 66만원이다. 이는 80㎏ 기준으로는 5만2000원이다. 여기에 관세율을 300%로 적용할 경우 국내 도입가격은 80㎏당 21만원, 400%는 26만원, 500%는 31만원이다. 관세율이 높을수록 수입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또 관세화를 선택할 경우 TRQ 이외의 통로로 쌀이 수입될 가능성 역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관세화 여부 놓고 찬반 '팽팽'

20일 경기 의왕시 농어촌공사 인재개발원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세계무역기구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서는 날 선 공방이 오갔다.

주제발표에 나선 송 연구원은 "웨이버는 한시적인 조치이므로 언젠가는 관세화해야 한다"며 "관세화에 대비해 장기적인 쌀산업 발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쌀 생산비 절감, 품질 제고 등을 추진해 쌀산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패널 토의에선 격론이 오갔다. 생산자 측의 박형대 전국농민협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업협정문 어디에도 내년부터 관세화 의무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고율관세가 영구 불변하지 않으며 관세 감축 및 철폐의 압력은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김경규 식량정책관은 "관세화 결정 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앞으로 모든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하고 쌀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며 "그동안 준비해 온 정부안을 기초로 이해관계자, 국회, 관계부처 등과 추가 논의를 통해 세부내용을 확정하겠다"고 답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박건수 통상정책심의관도 "협상이 타결될 경우에도 쌀에 대해서는 관세가 감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손재범 사무총장은 "정부와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외국쌀 수입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실질적인 빗장(관세화)이 풀리는 만큼 현장 농업인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며 "이에 현장 농업인의 불안감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ada@fnnews.com 김승호 예병정 기자

■ 주목할만한 해외사례.. '관세화' 택한 日 나중엔 이득
올해 말 우리나라의 쌀 관세화 유예 종료가 눈앞에 닥친 가운데 해외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와 상황이 비슷했던 일본과 대만은 관세화를 조기에 단행한 반면 필리핀은 개방시기 연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어떤 국가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는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의를 열고 필리핀의 관세화 의무를 2017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필리핀은 2012년부터 관세화 유예 연장을 주장하며 미국, 호주, 중국 등 반대하는 국가들과 협상을 해 왔다. 이에 따라 필리핀은 쌀 관세화를 한시적으로 면제받는 대신 쌀 의무수입물량을 현재 35만t에서 80만5000t으로 2.3배 늘리고 희망국가에 국가별 쿼터를 배정하는 한편 의무수입물량 관세율을 현행 40%에서 35%로 줄여야 한다.

아울러 필리핀은 의무면제가 종료되는 2017년 7월 1일부터 쌀을 관세화하기로 약속했다. 이번에 5년간 한시적인 의무면제에 대한 대가로 증가된 쌀 의무수입물량 등 양허사항은 의무면제 기간에만 적용된다.

반면 쌀 시장을 놓고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일본과 대만은 관세화를 단행했다. 일본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2000년까지 쌀 관세화를 유예했지만 종료시점을 2년 앞둔 1999년 관세화로 전환했다. 관세화 유예기간에 해마다 늘려야 하는 의무수입량(MMA)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대만은 2002년 1월 WTO에 가입할 당시 쌀에 대해 2002년 말까지 관세화를 유예하고, 2003년 이후는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는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대만은 관세화 연장을 포기하고 2003년부터 관세화를 단행했다.

쌀 관세화 단행 이후 일본·대만의 상황을 살펴보면 우려보다는 이득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쌀 관세화를 하면서 쌀의 관세를 종량세(341엔/㎏)로 설정했다. 가격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거의 1000%에 해당하는 관세다. 우리나라가 관세화를 할 경우 500% 이상의 고율 관세가 필요하다고 분석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거의 2배로 높다.

하지만 15년간 국제 쌀값이 3배나 상승하면서 현재는 가격 기준으로 환산한 관세가 28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수입쌀을 찾는 소비자는 외국인 등 극소수다. 수입쌀은 고율의 관세 때문에 질이 나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쌀에 비해 몇 배 더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 관세화 이후 일본의 쌀 의무수입량 72만t을 초과하는 물량은 200t 미만이다. 대만은 쌀 의무수입량을 초과하는 물량이 500t 미만에 불과하다.



반면 필리핀은 관세화 유예를 5년간 연장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쌀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것은 물론 쌀 이외 다른 품목의 관세인하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시적 연장이라는 점에서 필리핀은 2017년 이후에는 관세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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