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EU의 러시아 경제 제재 연대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2 17:16

수정 2014.10.23 20:52

[세계 석학에 듣는다] EU의 러시아 경제 제재 연대

유럽연합(EU)이 마침내 러시아에 대한 '3단계 제재'에 합의했다. EU에서는 늘상 그렇듯이 합의까지는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주된 문제는 제재가 공동의 목표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에 따른 비용은 온전히 개별 회원국이 부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대가는 아주 확실한 데다 가시적이다. 러시아 수출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일자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회원국들이 경제제재 목표를 러시아가 국제법과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보여주는 포괄적인 외교적 목표보다도 자국 경제에 닥칠 피해를 줄이는 데 더 집중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EU 외교정책의 필수불가결한 정책 수단으로 제재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보상할 공동기금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주고 있다. 기금 창설은 EU의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인 한편 제재 비용을 보전해주는 이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매출 감소 그 자체가 수출 매출 손실의 핵심은 아니다. 예컨대 식료품이나 자동차 같은 일반 소비재 업체의 경우 러시아 매출이 줄었다고 반드시 손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이 있는 한 한 곳의 매출 손실은 다른 곳의 매출 확대로 보전될 수 있다.

사실 러시아가 EU에서 수입하는 제품 대부분은 제재 영향을 받지 않는 이런 일반소비재다. 결국 지난해 EU의 대러 수출이 1200억유로에 이르고, 수만개 일자리가 걸렸기 때문에 제재의 경제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보도는 상당히 오도된 것이다.

경제적 손실은 다른 재화 생산으로 전환할 수 없는 특수한 노동과 자본을 활용해 오직 러시아 시장에만 특화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일 때만 가능하다. 이는 특히 독일의 경우에 그렇다. 유명한 독일 중소기업들(미텔스탄트)은 고도로 특화된 제품을 생산하곤 한다. 그렇지만 유연성과 적응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를 감안하면 일부 보전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용은 매우 한시적일 것이다.

EU '제재 보전 기금' 적용 기준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제재 품목 생산업체와 해당 제품을 다른 곳에서 팔 수 없는 특성을 갖는 경우로 한정하면 된다.

물량 기준으로는 지난 3년간 매출의 4분의 1 이상이 러시아 매출이고, 올해 일정 비율 이상 매출이 줄어든 경우로 정할 수 있다. 인력에 대해서는 재교육 프로그램으로, 특수 장비는 대출 차환 제공으로 보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보전이 필요하지 않은 부문 2곳이 있다. 바로 에너지와 금융이다. 왜 그런가?

우선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 위험은 무시할 정도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러시아가 유가 인상을 원하면 유럽은 그저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가스 재벌 가스프롬은 기존 계약을 파기해야만 유럽 소비자들에게 높은 가격을 물릴 수 있다. 더욱이 유럽이 러시아 가스 수출의 거의 유일한 고객이기 때문에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기존 송유관을 통해 가스를 흘려보내야만 한다.

따라서 에너지 부문에 대한 보전 필요성은 매우 낮다. 시베리아 같은 특수한 여건에 특화된 탐사장비 업체 정도만이 기금을 필요로 할 것이다.

유럽 금융부문 보전 필요성은 더 낮다. 제재 대상인 중장기 금융이 유럽 은행 사업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작다. 게다가 러시아 정치 체계가 유례없이 폭압적이 되고 있고, 법체계 역시 점점 더 자의적으로 변하고 있어 러시아 부유층은 부와 가족의 거점을 외국으로 잡는 추세를 더 강화할 것이다. 자유와 법치는 런던 같은 금융 중심지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다.

EU는 2006년 '세계화 조정 기금'을 만들고 수입 확대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부문에서 완충작용을 하도록 했다.
비록 EU 연간 예산 규모 1000억유로에 비하면 고작 5억유로 수준으로 출발했지만 기금 창설은 EU가 일반적인 정책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준비가 돼 있다는 중요한 신호였다.

이제 EU 공동의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따른 회원국들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비슷한 정치적 신호가 필요하다.
이번에도 EU 전체 예산에 견주면 기금에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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