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씨,1958년 서울 창신동 건어물 할머니 소개로 입양돼

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7.10 22:07

수정 2011.07.10 22:07

"강미선이 해답을 푸는 열쇠를 쥐고 있어요. 일단 강미선을 찾아야 합니다."

생모를 찾는 박미경씨(52)는 다급했다. 살아있다면 고령일 생모를 만나기 위해선 한시가 급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1958년 6월 24일(음력 5월 8일)에 서울 창신동 오거리한의원 앞(현재 롯데캐슬 자리)에서 태어나자마자 한 건어물 할머니의 손에 의해 서울 광희동1가의 양부모 집에 입양됐다. 박씨의 양부모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생모는 미혼으로 혼자 아이를 키워낼 상황이 되지 않자 건어물 할머니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준 것. 이 건어물 할머니에게 박씨의 양부모네 상황을 알려준 사람이 강미선(53)의 할머니(작고)다.

박씨는 고1 때 서울 안암동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강미선의 앞집에서 살았다.
한 해 앞서 학교에 입학한 박씨는 강미선과 함께 장충초등학교를 다니다 6학년 땐 나란히 을지초등학교로 전학, 졸업했다. 강씨에겐 2∼3살 터울의 남동생(강명구, 강승구)이 있었다.

"26∼27년 전에 강미선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강미선에게 소개를 받아 서울 서교동에 살던 건어물 할머니를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미선이네 식구는 그 할머니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단 뜻이잖아요."

생모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박씨가 간절히 강미선을 찾길 희망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강미선이 여전히 생모를 찾을 단서를 쥐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당시 건어물 할머니는 박씨를 보며 "생모가 걸어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박씨가 생모를 쏙 빼닮았단다. 박씨는 얼른 생모를 만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박씨는 양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나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교사까지 했지만 박씨는 심리적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괴롭혔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저를 키워준 우리 부모님께 말할 수도 없잖아요. 그냥 혼자 삭이면서 살았어요."

박씨는 생모를 만나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정신적 공허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씨를 짓누른 트라우마는 두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못 줬어요.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화를 참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친엄마를 만나 내 정체성을 알게 되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막상 생모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박씨. "내 인생의 숙제를 풀었다는 안도감이 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찾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막막한 마음뿐이에요."

/gogosing@fnnews.com박소현기자

■사진설명=강미선을 찾는 박미경씨의 백일 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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