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모를 찾는 박미경씨(52)는 다급했다. 살아있다면 고령일 생모를 만나기 위해선 한시가 급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1958년 6월 24일(음력 5월 8일)에 서울 창신동 오거리한의원 앞(현재 롯데캐슬 자리)에서 태어나자마자 한 건어물 할머니의 손에 의해 서울 광희동1가의 양부모 집에 입양됐다. 박씨의 양부모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생모는 미혼으로 혼자 아이를 키워낼 상황이 되지 않자 건어물 할머니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준 것. 이 건어물 할머니에게 박씨의 양부모네 상황을 알려준 사람이 강미선(53)의 할머니(작고)다.
박씨는 고1 때 서울 안암동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강미선의 앞집에서 살았다. 한 해 앞서 학교에 입학한 박씨는 강미선과 함께 장충초등학교를 다니다 6학년 땐 나란히 을지초등학교로 전학, 졸업했다. 강씨에겐 2∼3살 터울의 남동생(강명구, 강승구)이 있었다.
"26∼27년 전에 강미선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강미선에게 소개를 받아 서울 서교동에 살던 건어물 할머니를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미선이네 식구는 그 할머니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단 뜻이잖아요."
생모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박씨가 간절히 강미선을 찾길 희망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강미선이 여전히 생모를 찾을 단서를 쥐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당시 건어물 할머니는 박씨를 보며 "생모가 걸어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박씨가 생모를 쏙 빼닮았단다. 박씨는 얼른 생모를 만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박씨는 양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나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교사까지 했지만 박씨는 심리적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괴롭혔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저를 키워준 우리 부모님께 말할 수도 없잖아요. 그냥 혼자 삭이면서 살았어요."
박씨는 생모를 만나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정신적 공허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씨를 짓누른 트라우마는 두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못 줬어요.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화를 참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친엄마를 만나 내 정체성을 알게 되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막상 생모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박씨. "내 인생의 숙제를 풀었다는 안도감이 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찾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막막한 마음뿐이에요."
/gogosing@fnnews.com박소현기자
■사진설명=강미선을 찾는 박미경씨의 백일 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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