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거점 국립대학 법인화 안된다/정윤식 부산대 교수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3.21 16:32

수정 2014.11.07 00:20

자율성 제고를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입안된 '국립대 법인화'가 대학가의 핵심 이슈가 된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대는 국립대 법인화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관련 법령들을 개정, 보완하는 등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정부가 이와 같이 서울대 법인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서울대 법인화를 기회로 나머지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명분을 쌓고 추진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에 대해서는 교육비 부담 가중과 교육 양극화 심화, 대학 자치 실종,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공익 기능 후퇴, 기초 학문 고사, 구성원의 신분 불안과 대학사회 동요, 국립대 본연의 역할 상실, 정부 재정지원의 불확실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 법인화가 확정된 서울대의 자산 가치는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3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여타 국립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국립대에 기부되는 기부금의 40% 이상이 서울대에 집중돼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서울대 이외의 나머지 국립대들의 재정이 서울대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학교의 자산규모가 서울대의 수십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국립대가 많다.

때문에 법인화를 전격적으로 시행할 경우에 서울대는 현재 자산만으로도 일정 기간 재정운용상의 문제를 비켜갈 수 있을 것인 데 반해서 대다수 국립대는 자체로서의 재정 자립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울대 다음으로 큰 국립대라고 할지라도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이 법인화로 인한 재정운영상의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동안 국립대 법인화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육을 상업적 논리로 재단하는 정책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 헌법 제31조 제1항은 국민을 위한 보편적 교육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을 규정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립대 법인화는 수요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국민의 보편적 교육권을 제한하고 침해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립대 법인화가 외부적·수직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국립대들은 이제 본질적인 아카데미즘보다 비본질적인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매진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립대들은 현실적으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국립대가 수익사업을 통해 학교재정을 충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중단기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 대학은 등록금 인상이나 자산 처분 등 손쉬운 방법을 통해 재정문제를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취약계층의 교육기회 박탈과 소외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취업에 불리한 기초·보호학문은 축소되거나 폐과됨으로써 학문의 존재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교육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명제가 국립대학에서 어느 정도까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정부 당국은 국립대의 제반 문제를 경쟁이나 효율성 등과 같은 논리가 아니라 교육적 가치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교육을 효율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해결하려는 발상은 위험하다. 정부는 국립대 법인화를 졸속으로 급하게 추진할 것이 아니라 차분한 준비와 토론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국립대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진정한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고등교육 재정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 대학의 특성과 역량은 각각의 고유성과 차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국립대를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부산대나 경북대, 전남대 같은 거대 국립대학은 각 지역의 인재양성과 지역발전을 중추적으로 견인하는 거점 국립대학으로 존속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 대학은 법인화 시행 대상이 아니라 정부의 더 많은 재정지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을 정부가 바르게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