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안전 없이 선진국은 공염불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4 17:07

수정 2014.10.28 04:04

[fn논단] 안전 없이 선진국은 공염불

지난해 우리 국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6000달러를 넘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우리의 1인당 소득이 꾸준하게 증가해 이제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말들이 너무나 공허하게 들린다.

수학여행을 가던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린 후진적인 재난대처 시스템을 가진 우리가 소득이 높아졌다고 선진국인가? 아이들의 안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나라가 왜 선진국이 되려 하지?

지난 16일 아침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국을 강타한 후 나도 모르게 자주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뉴스를 들어 왔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당국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돈에 눈이 먼 청해진해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알고도 그대로 방치한 당국, 사고 현장에서 초동 대처의 미비함, 사고 이후 우왕좌왕한 정부. 이제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게 우리다. 한번 신뢰를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쉽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객지 생활을 시작해 초등학교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던 필자는 초등학교 동창 6명이 10여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최근에야 들었다. 36년 전의 빛바랜 사진을 찾아서 그 친구들의 얼굴과 까까머리 때의 행동을 기억하며 한동안 우울했었다. 2㎞ 넘게 시골학교를 걸어 다녔고 6년간 함께 생활한 친구들이었다.

사정이 이런데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을 졸지에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떨까? 지난 1993년의 서해 훼리호 전복사고 희생자 가족이 21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한다. 누가 이번 사고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

최소한 사회적 약자가 걱정 없이 살게 해주는 사회가 바로 선진국이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2005년 7월 7일 런던 지하철 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을 때 영국 정부의 대응은 매우 침착했다.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말을 아꼈고, 희생자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평소에 "이 나라 행정이 왜 이리 느려 터졌지"라고 불평했던 필자는 이런 사고대처 태세를 보고 영국을 다시 보게 됐다.

안전대응 매뉴얼이 3200개 있고 부처 이름도 안전행정부로 변경했지만 막상 재난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사고는 바로 이런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최소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구비해 실제로 잘 운영하지 못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도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돈을 벌고 선진국 시민이 되려는 이유는 좀 더 안전하고 여유를 누리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싶어서다.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희생자 가족과 구조된 학생들 그리고 안산 단원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관료주의적인 '안돼요'가 아니라 희생자 입장에서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며 상처를 치유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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