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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기 기술 뺏고 상생 외치는 대기업

김은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31 17:22

수정 2014.10.24 19:15

[기자수첩] 중기 기술 뺏고 상생 외치는 대기업

"소문 내지 말아주세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하는 사이이니까요."

정보기술(IT) 관련 중소기업의 한 임원이 이렇게 간곡한 부탁을 해왔다.

얘기인즉슨 이 기업은 지난 몇 년 동안 대기업과 함께 손잡고 특정 프로젝트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이 업체의 이름은 쏙 빼고 대기업이 100% 자체 개발한 것처럼 떠들썩한 마케팅을 펼친 것이 화근이 됐다.

이를 두고 중소기업이 강하게 항의하자 대기업 측은 "우리 상생하는 사이 아니냐. 앞으로도 계속 상생하고 싶지 않으냐"면서 간접적인 협박을 했다고 이 임원은 설명했다. 임원은 상생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린 적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상생이라는 단어는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감'을 뜻한다.

그러나 이 일을 보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상생은 대기업의 이른바 '갑질'을 보기 좋게 포장해놓은 말같이 들린다.

이 중소기업과 비슷한 일들이 산업 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중소기업에서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협업이라는 이름 아래 대기업과 함께 진행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일부 대기업들은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그후 해당 대기업들은 국내 최초, 세계 최초 개발이라는 수식어를 써가며 자본금으로 무장한 홍보와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그 이면에는 중소기업들이 자체 개발한 기술에 대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신세가 돼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중소기업들은 거래처에 대해 얘기할 때도 특정 대기업을 거론하는 것조차 비밀에 부쳐야 한다. 만약 발설되면 기존 거래에 차질이 발생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 혹은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거래처와 새롭게 손잡을 때는 더 심한 응징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 아침에 납품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기도 한다. 억울한 마음에 언론사에 제보하거나 하소연도 해보지만 무용지물이다.

하루 아침에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있다면 이 같은 경우에 해당될 확률이 높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이 보여주기식으로만 이용된다면 상생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겉으로 손잡고 웃으면서 구호만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상생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happyny777@fnnews.com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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