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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충무공 생가터와 휴대폰 보조금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02 18:16

수정 2014.09.02 18:16

[차장칼럼] 충무공 생가터와 휴대폰 보조금

초라하고 쓸쓸했다. 지난 주말 서울 초동 명보아트홀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충무공 이순신의 생가 터가 말이다. 명보아트홀 앞 길가에 사과상자 크기의 화강암 표지석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충무로'란 거리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곳엔 그 흔한 안내판도 없었다. 그나마도 자동차, 오토바이, 손수레 등이 표지석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다.
행인들은 충무공 생가 터란 사실을 모르는지 표지석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행인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 존경하는 위인으로 충무공을 꼽았을 텐데도 말이다. 표지석에는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명장…'이라는 세 문장이 새겨져 있다. 충무공을 고작 세 문장으로 표현한 것은 필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성의가 부족해서일까.

더욱 어이없는 사실은 명보아트홀 앞 충무공의 생가 터 표지석의 위치가 잘못됐다는 점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충무공은 지난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지난 1956년 한글학회와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의 답사를 통해 지금의 서울시 중구 인현동 1가 31의 2번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우리 후손들은 1700만명가량이 영화 '명량'을 관람하면서도 그의 생가 터조차 몰랐다는 얘기다.

온 국민이 열광하면서도 제대로 모르는 것은 '충무공 생가 터'만이 아니다. 이동통신 가입자 5600만명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구매할 때 이통사로부터 제공받는 휴대폰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휴대폰 보조금의 적정 금액은 27만원이다. 그러나 이통 판매점에 따라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천차만별의 보조금 지급이 이뤄진다. 이통 대리점은 요금할인, 약정할인 등을 보조금인 양 고객에게 제시한다. 번호이동과 신규가입, 기기변경 등에 따라서도 보조금이 다르다. 고객들은 휴대폰을 살 때마다 복잡한 보조금 셈법에 자신이 혜택을 받은 건지 손해를 본 건지 헷갈린다. 고객 역차별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같은 휴대폰 보조금 역차별을 해소하고자 정부가 고민 끝에 만든 법안이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다. 단통법이 10월 1일부터 시행되면 고객은 휴대폰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별 보조금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휴대폰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 혜택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단통법 입법 취지가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취지와 달리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단통법 시행에 대해 제대로 아는 고객은 드물다. 홍보가 부족한 탓이다. 고객이 제대로 모르는 단통법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단통법 시행을 위한 이통사의 시스템 구축도 아직 부족하다. 정부는 이달 내로 이통사와 공동준비반을 꾸려 단통법을 위한 제반 준비를 완료한다지만 시간 내 해낼지 걱정스럽다.
이달엔 추석 연휴 5일과 SK텔레콤과 LG U +의 영업정지 기간 14일이 끼어 있어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리 완벽하게 만든 제도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3년여의 철저한 현장조사와 치밀한 시뮬레이션 끝에 명량해전에서 전선 12척으로 적선 330척을 물리쳤듯, 정부는 30년 이통 역사의 고질적 병폐인 불법 휴대폰 보조금 근절을 위해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자세로 나서야 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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