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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13’ 프로젝트] (5―⑤) “예산 쉽게 따기 위한 연구는 낭비 정부도 단기 성과 보채지 말아야”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16 17:37

수정 2014.10.28 07:16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 원 사진=박범준 기자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 원 사진=박범준 기자

"국내 기초과학이 발전하고 이것이 노벨상으로 이어지려면 한 분야를 오랫동안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5일 서울 홍릉 연구실에서의 인터뷰 내내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이 유행에 또는 연구비에 쫓겨 연구 과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국내 과학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미래전략관으로 일하며 과학정책을 다뤘던 유 박사는 "유행에 따른 연구과제를 선택하는 과학자들은 그 연구와 함께 젊음도 간다"며 "과학자들이 진정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을 때 국내 기초과학은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초과학의 수준은.

▲우리나라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1990년대 중반 과학기술부의 'G7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G7사업의 목표가 기업과 협력연구를 통한 실용화를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최초로 대학 연구실에 국책연구비가 투입된 것이다.

이후 다양한 투자가 이뤄졌고 최근에는 비즈니스 벨트 사업 내의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되는 등 20년 동안 정부의 기초과학 투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아울러 논문 게재 수도 증가했다. 양적인 논문은 과거에 비해 증가했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 지표인 피인용횟수는 연구개발 투자 상위국 중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최하위권이다. 특히 고피인용 논문 수는 절대수도 작고 증가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려서 현재의 추세라면 선진국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기초과학 발전과 노벨상을 받기 위해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국제협력과 이슈가 되는 논문(질 높은 논문)이 많이 나와야 한다. 과학 선진국은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하고 그 분야와 관련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사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아이디어가 오고가며 이것이 연구를 한 단계씩 발전시킨다. 우리나라도 과학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강화해 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전문가 그룹의 네트워크 안에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피인용지수 중 인용횟수가 상위권에 들어가는 것을 고피인용지수라고 하는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 이슈가 되는 논문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과학 저변 확대와 가능성 있는 과학자의 집중 지원은 기본이고 국제협력과 질 논문 발표에도 집중해야 한다.

―기초과학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기초과학을 하는 데에는 중요한 태도가 있다. 과학자 스스로가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하고 할 만큼 가치가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또 그것을 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유행을 따른 연구과제, 정부 연구비를 쉽게 따기 위한 연구과제에 매달리면 연구비 쓰는 동안 청춘도 가게 된다. 도전적인 연구를 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게 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연구지원 기관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자들을 지원해야 하며 과학자들 역시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과학자들이 통찰력도 갖춰야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통찰력 하나가 수십년의 연구를 좌우하기도 한다.

―과학자의 통찰력이란.

▲쉽게 표현할 수 없지만 창의적 관점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호기심을 갖는데 이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을 말한다. 통찰력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통찰력의 기본은 많은 정보와 기본적인 이론을 모두 섭렵해야 한다. 그런 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과학자들에게는 이런 통찰력이 중요하다. 평생 풀어야 할 연구 과제에 대해 기존의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등 공공 부문이 기초연구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10여년 전부터 고민한 연구개발 투자 선순환 모델이 있다. 과거에는 과학적 발견이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수익성으로 되돌아 왔다. 수익성이 다시 과학적 발견으로 재투자되는 형태로 선순환이 됐다. 즉 Discovery(발견)→Technology innovation(기술 혁신)→Return(수익, 결과)→Discovery(발견)로 연결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선순환 모델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수익성 또는 결과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고 기술발전이 과학적 발견에 영향을 주게 된다. 과학적 발견과 수익성, 결과는 벽이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Technology innovation(기술 혁신)→Discovery(발견)→Return(수익, 결과)→Technology innovation(기술 혁신)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기술 발전 즉 장비나 시설이 과학적 발견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 발견이 수익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 생명과학에서는 최근 중요한 화두다. 이런 추세는 융합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선순환의 변화는 공공부문의 역할을 중요하게 한다. 새로운 발견을 위한 대규모 연구시설이나 장비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풀 수 있는 문제다.

―과학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하는가.

▲노벨과학상이 나오면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기초 과학에 대한 꿈을 품게 해준다는 것이다. 또 젊은 기초과학도에게도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1등을 해 본 사람은 새로운 문제에 대해 도전적인 자세를 취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한 셈이다. 노벨과학상 역시 이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초과학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아울러 기초과학에 대한 공공, 민간 부문의 투자가 확대될 수도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의 파급 효과는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과학정책은.

▲일단 민간에서 투자할 수 있는 분야와 정부가 꼭 투자해야 할 분야에 대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또 연구자들에 대한 안정적인 직업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연구인력의 숫자만 확대하는 것 역시 해결책이 아니다.

특별취재단 윤정남 팀장 정명진 임광복 이병철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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