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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국내銀 도쿄지점에선 무슨 일이..판도라 상자 열어보니

김현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0 17:05

수정 2014.04.20 17:05

[현장취재] 국내銀 도쿄지점에선 무슨 일이..판도라 상자 열어보니

【 도쿄(일본)=김현희 기자】 국내은행 일본 도쿄지점장들이 철저히 숨기며 불법 대출과 리베이트를 거래했던 '판도라상자' 안에는 3명의 '브로커'가 존재했다.

K은행 도쿄지점장이었던 L씨도 이들 브로커의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우리·기업은행 대출을 알선하려 했다. L씨는 그야말로 이들 브로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 브로커들은 시중은행 지점장에게 접근했고 대출 커미션을 서로 나눠 갖자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일부 지점장과 무려 13년 동안 불법 대출을 진행해 왔다.

일본에 정착하기 힘든 동포와 일본에서 영업하기 힘든 시중은행 도쿄지점들의 빈틈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다.

이들 브로커 중에는 시중은행 출신도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은행의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2001년 K은행 부동산대출 시작

시작은 K은행 도쿄지점이었다. 2001년 현대차 등 기업대출을 모두 상환하고 부동산담보대출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 중심에는 브로커 B씨가 있었다. 그와 결탁한 한 도쿄지점장은 1980년대 후반에 도쿄로 유입된 신진 동포(뉴커머)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대출수수료는 부동산 거래수수료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1년부터 시중은행 도쿄지점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한 관계자는 "부동산을 거래하면 부동산회사들이 이른바 '복비' 차원으로 매도자와 매수자에게 각각 매매가의 2% 수준으로 수수료를 받는다"며 "브로커들도 대출 알선비 구조를 부동산 거래수수료와 같은 구조로 은행과 대출자에게 각각 1~2%씩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 1990년도 버블(거품)이 붕괴된 후 부동산 거래가 전무하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하면 수수료를 받는다.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인건비 등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용인될 수준의 수수료였다. 커미션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대출규모가 커지고 브로커들이 받는 수수료도 자연스럽게 100만엔 단위를 넘어섰다.

이 수수료는 불법 리베이트로 브로커와 도쿄지점장들이 나눠 갖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 브로커는 새로 부임하는 도쿄지점장들에게 "용돈 한번 벌어보지 않겠느냐"며 접근하기도 했다. 도쿄지점장을 지낸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출알선으로 실적도 유지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길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도쿄지점장으로 재임할 당시 K은행과 달리 다른 은행들에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자식들에게 떳떳하자'며 브로커 보이콧 운동까지 했을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K은행 도쿄지점은 대출알선 조직이라고 불릴 만큼 조직화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K은행 도쿄지점은 브로커들과 함께 지점장, 대출담당 직원들이 리베이트를 나눠 갖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리베이트는 말단 직원들까지 '용돈'이라는 개념으로 나눠 가진 것이다.

W은행도 2005년부터 이 같은 대출브로커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목숨을 끊은 C씨는 타행 도쿄지점장들과 아는 동포 고객들에게 "전임자들의 (부당대출) 일을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C씨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한 관계자는 "술자리에서도 부당대출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I은행도 W은행과 비슷한 시기에 부당대출이 시작됐다. 브로커들이 놓은 '용돈도 벌면서 실적을 유지할 수 있는' 대출알선 구조의 덫에 빠져든 것이다.

이 중 한 은행의 고위 관계자가 도쿄를 한달에 한 번씩 방문하며 커미션의 일부를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점장은 한국 본점으로 돌아오면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도쿄지점장은 통상 본부장을 몇 년 거쳐 임원이 되는데 이 지점장은 '고속승진'을 한 것이다. 당시 도쿄지점장을 지낸 관계자는 "지점장들이 다들 놀랐다. 얼마나 갖다 바쳤으면 승진이 이렇게 빠르냐는 이야기가 돌고 돌았다"며 "그 지점장은 현지에서도 브로커와 공개적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을 정도로 대출 알선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대출금리보다 비싸

브로커들도 담당 출입은행이 있었다. 브로커 A씨는 국내 시중은행 출신으로 일본 전국적으로 영업망이 있었다. 이렇다 보니 도쿄지점장들도 A씨의 말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A씨가 가져오는 물건은 우량한 것도 있었지만 일단 이렇게 A씨의 영업망을 활용하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일본 현지 영업도 만만찮은 데다 브로커의 대출알선만 활용하면 실적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로커 B씨는 도쿄에서 유명한 부동산 임대업자다. 부동산을 알선해주면서 대출을 일으키기 위해 국민·우리·기업은행 도쿄지점을 이용했다. 야쿠자들은 반사회적 세력이기 때문에 직접 은행에 대출을 알선하기 힘들어 브로커들에게 대출자를 알선해주고 리베이트를 받는다. 야쿠자까지 개입되는 구조로까지 진화해 버렸다.

동포들도 일본 현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터라 국내은행 도쿄지점으로 알선해주는 브로커들이 고마웠다. 한 동포는 "대출을 못 받는 것보다 커미션을 주는 게 낫다"고 할 정도였다.

다만 커미션 규모가 문제였다. 대출금리가 통상 연 2~3%인 데 비해 커미션은 브로커에게 대출자금의 4%를 제공했다. 은행 도쿄지점도 같은 4%를 주면서 모두 합쳐 8%가량의 커미션이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3억엔을 대출받을 경우 1년에 내야 할 이자가 최대 300만엔이라면 커미션은 800만엔이었던 것이다.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8000만원이다. 이를 지점장과 브로커가 나눠 가졌고 부지점장과 과장, 대리까지 받은 것이다.

■허위명의로 대출 수억엔 취급

문제가 되는 일부 도쿄지점장들이 취급한 부당대출 구조는 이렇다. 국내 대포통장처럼 노숙자 등 여러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한도를 최대한으로 해주는 것이다. A, B, C씨의 명의를 이용해 각각 2억~3억엔을 대출받는다. 이를 도쿄 현지에서는 '분할대출'이라고 한다. 이들의 담보와 집주소는 똑같다. 이 대출금은 도쿄지점장들이 가져가거나 이 같은 분할대출을 악용해 빌딩을 사는 악의적인 뉴커머들에게 흘러들어갔다. 리베이트가 용돈 수준이었다면 이는 횡령 수준인 것이다. 지점장들은 이 대출금으로 뉴커머들과 건물을 사고 월세를 받아 이자를 갚거나 돈을 벌었다. 건물 매매로 차익을 버는 지점장도 있었다. 이자를 갚다 보니 연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국민·우리·기업은행의 부당대출이 부실대출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다.


이는 지점장이 전결권을 보유한 만큼 지점장이 허락하면 그대로 대출이 취급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현지 관계자는 "B은행 도쿄지점장은 부인 명의로 사업자(법인)를 세우고 바지사장(명의도용)을 몇 명 내세워 대출을 일으켰다"며 "도쿄지점의 부당대출은 이 같은 동일인 한도 초과 대출 구조였다.
같은 주소, 같은 빌딩이면 심사 당시 제외돼야 하는데 지점장 전결이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maru1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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