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성공아이콘 임원’도 당일 해고통보

윤휘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2.08 17:16

수정 2014.11.04 14:51

"제가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게 얼마인데… 갑작스러운 통보에 정신이 멍해졌고 살 길이 막막해졌어요. 사실 아직 제 정신이 아닙니다."

최근 A그룹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B상무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억지로 참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B상무 스스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실토했다.

B상무는 며칠 전까지 잘 나가는 대기업 중역이었다. '58년생 개띠'인 그는 전무 승진을 기대하던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회사로부터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아 충격이 더 컸다고 한다.
그룹에 입사한 후 월등한 업무성과를 내며 동기들보다 항상 한 발 앞서 승진대상에 이름을 올렸지만 올해는 설마 했던 결과물을 받아든 것이다. 그는 통보를 받은 그날 바로 짐을 정리해서 회사를 빠져나왔다.

C사의 D상무도 최근 그룹의 급작스러운 인사 발령으로 큰 충격 속에 당일 곧바로 회사에서 짐을 쌌다. 그 회사에서 재무와 홍보를 담당하던 D상무는 회사 내에서 촉망받는 임원 중 한 명으로 당초에는 올해 퇴임 명단에서 제외돼 있었지만 막판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상무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당장 뭘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서 "일단 당분간 쉬면서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연봉과 고급차로 대변되는, 부러움의 대상인 대기업 임원들의 쓸쓸한 퇴장 모습이다. 임원들이 회사의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은 통상 인사 당일 오전.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는 설마 하는 순간에 청천병력같은 통보를 받는 것이다. 특히 일부 은행권에서는 인사명령을 내기 2시간 전에 당사자에게 해임 및 퇴거 통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원은 '임시 직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실제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로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당장 살 길이 막막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모아둔 돈이 있기는 하지만 50대 젊은 나이에 '실직자'로 전락한 만큼 노후를 보장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자녀 뒷바라지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대학생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장사 또는 사업을 하고 싶지만 일단 아는 것이 없고, 또 퇴직금으로 사업을 하다 다 날렸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어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일부 기업들은 퇴직 후 일정기간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그룹이 삼성. 삼성그룹은 사장뿐 아니라 임원들에 대해서도 일정기간의 퇴직 유예시기를 주고 있다. 부사장 이상의 임원이 보직을 못 받고 퇴직할 경우 상담역, 자문 등의 직책으로 3년 이상 더 재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전무 이하의 임원이 보직을 못 받고 퇴직할 경우 별도 직책으로 2년 이상 재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그룹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고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해도 형식적인 자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 D상무의 경우 퇴임과 동시에 2012년 11월 30일까지 1년간의 '자문역'이라는 직책을 받았지만 별도의 자리도, 보수도 없는 직책일 뿐이다.

'퇴직' 임원들은 사회적인 지위의 추락도 걱정해야 한다. 남들이 인정하던 능력자에서 우려의 대상으로 떨어진 만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상황을 설명할 것인가도 걱정거리 중 하나다.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해고 통보를 받은 한 상무는 "겉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대기업 중역직은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며 "현직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일이 닥치고 보니 모든 게 다 막막하다.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yhj@fnnews.com윤휘종 김기석 박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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