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토종 ‘매운 맛’에 글로벌 No.1 ‘눈물’

유현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13 17:19

수정 2013.11.13 17:19

토종 ‘매운 맛’에 글로벌 No.1 ‘눈물’

침대, 밀폐용기, 자전거, 로봇청소기, 콘돔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중소·중견기업들이 글로벌 브랜드에 맞서 '안방 불패'의 신화를 쓴 주역들이다. 한국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에 특히 까다로운 시장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주거문화와 여가문화를 간과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이댔다가 짐을 싼 기업들도 이미 여럿이다.

13일 중견·중소기업계에 따르면 토종 1위에 도전장을 낸 글로벌 브랜드들이 줄줄이 낙제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한국 기업을 제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포기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토종 1위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에이스침대의 지난해 매출은 1768억원으로 전체 침대 시장의 30%를 장악하고 있다.

같은 기간 글로벌 1위 매트리스 브랜드인 씰리침대는 에이스침대의 10% 수준의 실적에 만족해야 했다. 씰리코리아는 에이스와 시몬스, 썰타로 이어지는 이른바 토종 삼각편대에 맞서 전 세계 어디서도 출시한 바 없는 침대프레임을 제작한 데 이어 매트리스 렌털 서비스까지 도입했지만 토종 1위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로봇청소기 부문에서는 일렉트로룩스가 토종기업의 제물이 됐다. 일렉트로룩스는 지난 2003년 로봇청소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지만 200만원 이상의 고가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온돌문화인 국내 주거문화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도 이들의 패착이었다. 대신 국내 소비자들은 마미로봇, 모뉴엘, 유진로봇 등 중소기업을 선택했다. 국내 로봇청소기 브랜드는 미세먼지까지 깨끗이 닦아낼 수 있는 물걸레 기능을 더하면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밀폐용기 시장에서는 락앤락과 글라스락이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는 나머지 15%를 두고 소규모 업체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세계 1위 밀폐용기 브랜드인 타파웨어는 한국의 김장문화에 적합한 밀폐용기를 출시하고 쿠킹클래스와 홈파티 지원 등을 벌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코렐이 밀폐용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면서 만년 3위도 지키기 힘든 형편이다.

자전거 역시 독일의 메리다와 스위스의 스캇 등 여러 수입제품이 넘쳐나는 가운데 삼천리자전거가 국내 자전거 시장 점유율 1위(37%)를 고수하고 있다.

삼천리자전거 관계자는 "수입 브랜드들은 일부 전문 라이더 및 자전거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고급 자전거에 주력하는 반면, 삼천리자전거는 산악자전거(MTB), 하이브리드와 접이식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며 대중화를 꾀한 전략으로 시장 1위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이미용 기기 양대산맥 유닉스전자와 조아스전자에 치이는 글로벌 브랜드도 있다. 필립스전자와 로벤타, 비달사순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양사가 시장을 60% 이상 장악하면서 3위 자리를 두고 자신들끼리의 경쟁이 이미 일상이 돼버렸다.

이 밖에 콘돔 유니더스는 국내 시장 점유율 65%, 세계 시장 점유율 30%를 기록하며 세계에서는 2위지만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 1위 콘돔 브랜드 듀렉스는 유니더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굴욕을 맛봤다.

1위는 아니더라도 토종의 자존심을 지킨 브랜드도 있다. 건전지와 면도기가 그런 제품이다. 외환위기 직후 서통의 '썬파워'와 로케트전기의 '로케트'가 듀라셀에 매각될 당시만 해도 국내 건전지 시장은 외국계 기업이 장악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토종 건전지 브랜드 벡셀은 1위 에너자이저(44.5%)에 이은 2위 자리를 꿰차며 해외로 매각된 듀라셀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브랜드 질레트에 이어 국내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른 도루코도 벡셀과 닮은 꼴이다. 도루코는 현재 질레트와의 점유율 차이가 5~6%포인트에 불과한 2위로 3위인 쉬크보다 점유율이 2배 이상 높다.

한 글로벌기업 관계자는 "아시아 시장 진출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하는 시장이 한국"이라며 "한국에서의 성공은 아시아 전체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만 한국에서의 실패를 발판 삼아 중국과 동남아에서 성공하는 사례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yhh1209@fnnews.com 유현희 최영희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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