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車부품값 공개하랬더니.. 업체들 시늉만

김재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0 17:23

수정 2014.10.23 22:31

車부품값 공개하랬더니.. 업체들 시늉만

"홈페이지에서 간신히 코너를 찾아 들어갔더니 영문으로 부품 이름만 좍 나열해 놨더라고요… 부품값 알아보려다 포기했어요."(서울 거주 30대 소비자)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자동차부품 가격공개제도'가 시행 초기부터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해당 업체들이 공개 자체를 거부하고 있거나 하더라도 형식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 제도의 취지는 자동차부품의 소비자 가격을 자동차업체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해 업계 자율로 부품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 비교는커녕 확인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국토부의 태도도 문제다. 시작은 했지만 제도 정착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언제 마련될지 오리무중이다.

중국 정부가 자동차 부품 가격을 내리고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해 전방위적인 조사를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어쨌든 공개는 했잖아요"

20일 본지가 주요 완성차 및 수입차업체, 부품사 20여곳의 홈페이지를 점검한 결과 대다수 업체가 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부품 가격은 '파셜'(partial)이나 '어셈블리'(assembly) 등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최소 단위로 공개해야 한다. 파셜이나 어셈블리는 작은 부품 몇 개를 조립해 만든 덩어리 부품을 말한다.

하지만 업체들은 정해진 틀조차 없이 업체 마음대로 공개를 하고 있었다. 소비자의 편의성 따윈 애초에 안중에 없는 듯했다.

일부 업체는 회원 가입 및 차량등록 후에야 부품가격 조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놨고, 일부는 부품 가격 조회 사이트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배치하거나 영문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또 부품명을 알아야만 검색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부품 가격을 조회하면 현대모비스 홈페이지로 연결됐다. 현대모비스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진행한 후 본인의 차량을 등록해야만 조회가 가능했다. 르노삼성자동차 역시 회원가입 후 조회가 가능했다.

수입차 BMW와 벤츠는 영문으로 부품명을 직접 입력해야만 가격을 조회할 수 있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홈페이지 메뉴가 전부 영어로 돼 있어 관련 항목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영어가 서투른 사람이라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어렵게 가격조회 항목을 찾아도 차량 모델을 입력하면 전체 부품이 그대로 나열돼 소비자가 필요한 부품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실례로 아우디 A3 2.0TDI를 검색하면 2318개의 부품이 나왔다. 포르쉐 역시 모델별로 PDF파일로 부품목록을 다운받아야 했는데 모든 부품이 영어로만 표기돼 있었다. 벤틀리는 부품조회 항목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시행만 하면 끝?

국토부의 안일한 태도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인터넷을 통한 가격 공개' 조건 외엔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있지 않기 때문. 웹사이트가 아닌 영업용 전단지를 통해 부품가를 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둬 업체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것도 맹점이다. 여론에 떠밀려 제도시행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자동차 관리법에 따라 부품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업체는 1년 이하 징역 혹은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고급 수입차 브랜드의 차량 한 대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벌금은 시쳇말로 '껌값'이다.

현재 국토부는 '도입 단계인 만큼 시간을 두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해 7월부터 부품 가격 공개를 예고해 놓고 1년 이상 세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주무부처의 태도가 이렇듯 모호하니 업체들도 '부품가 공개 사이트를 구축했다'는 사실에만 중점을 둘 뿐 실제 소비자들의 편리한 이용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수입차업체에 잇단 철퇴

한편 중국 정부는 최근 수입차 업계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끝에 아우디에 18억위안(34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아우디가 지난해 기록한 매출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BMW·벤츠·재규어-랜드로버·크라이슬러·도요타·혼다·닛산 등 중국에 진출한 수입차 업체들은 지난달부터 차량과 부품가격을 20~30%가량 앞다퉈 낮추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전문가는 "정부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업체들은 따라가게 돼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일부러 업체들을 봐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소비자들이 직접 부품 가격을 조회해 비교하라는 것 역시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 김병용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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