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기업-中企 상생 아직도 멀었다] (상) 납품단가 어떻기에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7.21 15:01

수정 2010.07.22 15:01

#1. 상반기 기업공개를 한 정보통신(IT) 분야 A기업은 대기업에 IT 관련 하드웨어를 납품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 B사장은 상장 준비를 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회사가 기업공개를 하면 재무제표가 모두 노출돼 거래처인 대기업이 영업이익 등 수치를 보고 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B사장은 "영업이익이 많이 남는다고 대기업이 트집을 잡아 단가를 낮추도록 요구하면 상장 추진을 철회할까도 생각했다"며 "아예 무시하고 다른 기업에 납품하고 싶어도 기존 거래처 눈치 때문에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2. 바닥재 전문 중소기업 C사는 지난해 대기업 계열 건설사에 5억원 규모의 제품을 납품했지만 아직 대금을 받지 못했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돈을 줄 수 없다는 게 이 건설사의 핑계였다.
C사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우량건설사가 설마 5억원이 없어 결제를 안해주겠냐"고 반문했다.

대기업들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 대금결제 지연, 영토 무한확장 등으로 중소기업들이 '고사 위기'라며 아우성이다. 대기업은 연일 사상 최고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샌드위치 신세인 중소기업에는 내가 만든 제품을 팔아도 돈은 내 돈이 아닌 셈이다.

■납품단가, 도대체 어떻기에

중소기업중앙회가 20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회사의 원자재 구매가격은 지난해 1월 100에서 올해 4월 118.8로 18.8포인트 올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납품단가는 100에서 101.7로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특히 주물, 금형, 콘크리트, 레미콘, 밸브, 플라스틱은 원자재 구매가격이 10∼20포인트 이상 올랐지만 오히려 납품단가는 인하됐다. 원료값 상승분을 제품에 반영하지 못한 채 오히려 싸게 판 꼴이다.

한국골판지포장공업협동조합 김진무 전무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면 납품하는 제품에도 1∼2개월 안에 상향 조정된 금액이 반영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그렇다고 중소기업들이 원자재를 싸게 살 수 있는 협상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원자재 값 인상과 납품가 하락에 따른 불이익은 고스란히 중소기업들이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때문에 지난 4∼5월 주물·단조·골판지·레미콘 업계 등에선 대기업들이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을 경우 납품 중단조치도 불사하겠다고 맞서기도 했다. 대기업들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을(乙)' 중소기업이 '갑(甲)' 대기업에 선전포고까지 해야 할 정도로 납품단가 문제 해결이 이들에겐 절실했던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제조원가 중 원자재 등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62.1%로 절대적으로 높아 원자재 가격 상승은 제조원가와 직결된다.

■대기업, 영토 무한확장에도 중기 '골병'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막는 것은 비단 납품단가 문제뿐만이 아니다. 대기업 계열사인 유통회사들이 골목상권까지 넘보며 영세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부터 최근에는 대기업 계열사의 소모성 자재(MRO) 구매대행회사들이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해 계열사의 하청업체들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서병문 이사장은 "만날 상생을 외치지만 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한 적이 있었느냐"며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과거와 같은 공무원들의 태도라면 대·중소기업 상생은 요원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나 대기업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 주길 바라는 것보다 중소기업들이 자체 경쟁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은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70∼80%가량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기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는 또 중소기업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일례로 한 반도체 장비 제조회사는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인 S사를 최근 거래처 목록에서 과감히 지워버렸다.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을 S사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 때문이었다. 그 대신 이 회사는 S사를 제외한 관련업계 글로벌 '빅5' 업체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납품회사가 되는 것을 최고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중소기업의 끝은 대기업 하청업체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bada@fnnews.com김승호 이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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