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정치권의 대기업 규제, 이대로 좋은가] “표 얻기 위한 ‘대기업 때리기’는 위험한 발상”

예병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2.12 17:45

수정 2012.02.12 17:45

[정치권의 대기업 규제, 이대로 좋은가] “표 얻기 위한 ‘대기업 때리기’는 위험한 발상”

  정치권이 대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규제가 산업생태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통해 내놓은 것이 아니라 총선과 대선에 대비해 국민들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하다는 데에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재벌개혁을 야권 연대의 핵심의제로 제안한다"며 국내 10대 그룹 해체를 목표로 한 고강도 정책을 내놨다.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통해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 규제 강화, 청년고용의무할당제 등의 공약을 쏟아놓고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대주주 주식양도차익 과세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정치권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폐해를 방지하겠다며 연일 각종 방안을 쏟아놓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7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치권의 대기업 정책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김세종 박사(중소기업연구원), 김우진 교수(서울대), 김정호 원장(자유기업원), 전수봉 조사본부장(대한상공회의소), 조승민 수석전문위원(노사정위원회·이하 가나다 순)이 참석해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정치권의 대기업 규제 현황에 대해 토론했다. 이번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규제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정치권이 선거의 표를 의식해 실현가능성이 없거나 대안이 될 수 없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을 규제하는 정책도 전문가들의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대기업 관련 규제정책을 쏟아내는 배경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정호 원장(이하 김정호)=대기업 규제 정책의 배경에는 정치적 상황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경제가 나빠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경제정책인 친기업 정책이 비판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올해 총선과 대선 등 2개의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철이 되면서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국민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고 국민에게 정의롭게 보이는 '대기업 때리기' 정책을 들고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대기업 때리기는 당사자인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장 좋은 선거용 정책이다.

 ▲김세종 박사(이하 김세종)=선거라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가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는 등 한국 경제가 외견상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 국민은 이런 성장과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치권이나 재계가 그동안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해왔다면 대기업에 대한 국민 정서가 지금처럼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우진 교수(이하 김우진)=선거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정당은 결국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전체 국민의 다수가 지지하는 대기업 규제 정책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 대기업 관련 정책이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4월에 있는 총선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조승민 위원(이하 조승민)=원인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삼해졌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또 국민들은 양극화의 원인을 재벌이나 대기업에서 찾고 있다. 대기업 규제가 정치권의 득표 전략인 측면이 있지만 심화된 양극화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대기업 규제가 요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에서 여러 가지 대기업 관련 정책이 나오고 있는데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김우진=대기업 규제 정책을 평가하기 전에 정책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업구조를 미국형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나 유럽형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연구, 사회적 합의가 선행된 이후에 대기업 규제에 대한 개별 정책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김정호=대기업 규제가 선거용으로 이용되면 위험하다. 정치권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대기업 규제 정책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 침체와 같은 부작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기업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를 금지하거나 재벌세를 도입해 재벌의 계열구조를 끊었을 경우 대기업들은 오너가 없는 종업원 지주회사로 바뀌게 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이미 실패한 제도다. 대표적인 예가 여러 문제만 드러내다 부도로 다른 회사에 인수된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판매㈜다.

 ▲전수봉 본부장(이하 전수봉)=선거철에 주로 나오는 재벌개혁 정책의 문제점은 청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재벌을 개혁하면 경제 집중이 완화되고 양극화가 해소되느냐에 대한 논의가 없다.

 ▲김세종=대기업은 공(功)보다 과(過)가 많은 집단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지난 2009년 폐지하면서 대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출총제 폐지 이후 55대 상호출자제한 기업의 계열사는 504개가 늘어났지만 이 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8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비스 업종에 집중돼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대기업들이 잘못을 스스로 고치려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동반성장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수많은 정책이 나왔지만 제대로 이행된 정책은 찾기 힘들다.

 ▲김우진=한국 재벌의 문제는 경영권의 사적편익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 재벌은 계층적인 출자구조를 바탕으로 투자한 자본보다 더 많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 때문에 경영권의 사적편익이 발생한다. 경영권의 사적편익은 계열사 간의 거래를 통해 부(富)가 한쪽으로 쏠려 기업의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주는 '터널링(tunneling)' 효과를 발생시킨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가 대표적인 예다.

 ▲김정호=대기업의 터널링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터널링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 더 심각한 문제다.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진출하게 되는 것은 우리 사화의 이중구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다. 반면 골목상권과 같은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으면서 쉽게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도 있다. 글로벌을 주시장으로 하는 기업과 국내를 주시장으로 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비교하면 당연히 글로벌 기업의 우위에 있다. 두 종류의 기업 간에 발생하는 경쟁력 격차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손쉽게 국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에 골목상권과 같은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하면 당연히 대기업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정책이든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종= 대기업이 골목상권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빵집의 경우 대기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손쉽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유명 브랜드의 빵을 도입하는 방법으로 연구나 개발과 같은 투자 없이 간단하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동네의 작은 빵집이 대형 빵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거나 대기업 내부에서만 소비하기 위해 소규모로 하는 것은 문제삼을 수 없지만 대기업이 전문분야와는 전혀 동떨어진 빵집과 같은 사업을 하는 것은 규제해야 한다. 

 ▲조승민=국민감정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따질 수 없다. 재벌가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일궈내는 것이 아니고 기존 시스템을 이용해 쉽게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일반 국민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김세종=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규제 등 대기업 규제 정책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정책을 변경하는 데 3~4년간 연구를 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다. 우리나라는 법과 정책 등을 급조해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 여러 전문가가 많이 있으니 정책을 만들며 연구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수봉=소통과 함께 심층적 연구가 중요하다. 지금 논의되는 재벌 정책만해도 소비자로서 국민에 대한 논의는 없고 모두 공급자 위주의 이야기만 나온다. 지난해 불거졌던 대형마트의 '통큰 피자'나 '통큰 치킨'의 경우 영세업자의 생존권 못지 않게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점이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빵집 문제의 경우 좋은 품질의 빵을 저렴한 가격에 먹고 싶은 소비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소비자로서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과도한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난 2~3년간 국민이 기대했던 '트리클 다운(낙수효과·대기업 성장이 결국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돌아감 )'은 효과가 있었나.

 ▲조승민=낙수효과에 대한 실망적인 사례가 고물가다. 수출 대기업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폈는데 돌아온 것은 고물가뿐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동안 국민은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자 이에 대한 불만이 낙수효과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기업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김세종=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업체가 한동안 낙수효과를 가장 많이 봤던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대기업은 이 업무의 상당부분을 외부에 맡겼다. 하지만 현재는 MRO를 이용해 대부분의 일을 대기업 스스로 해결하면서 대기업에 집중된 자본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장사가 잘되면 대기업 직원들이 회사 주변 식당에서 회식을 자주한 덕분에 식당들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낙수효과도 사라졌다.

 ▲전수봉=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6% 성장했지만 실질 구매력을 반영한 통계인 국내총소득(GDI)은 1.1%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는 우리나라가 생산력은 늘어난 데 반해 상대적으로 구매력은 줄어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만 봐도 낙수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서 우선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김우진=몇 가지를 구분해서 사례별로 봐야 한다. 일감을 몰아주는 대상이 되는 회사의 지분율이 중요하다. 만약 일감을 몰아준 대상 회사가 100% 자회사라면 일감몰아주기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0% 자회사는 사실상 회사의 일부 사업부이기 때문이다. 100% 미만 계열사지만 상장사이고 시장 가격으로 몰아주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배주주의 친인척이 100% 가까운 지분을 가진 업체가 사업 기회를 독점할 수 있도록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다. 최근 특정 지배주주가 3% 이상 보유한 회사에 30% 이상을 몰아주는 것에 대해 과세해 일감몰아주기를 막자는 정책도 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경제적인 논리로는 일감몰아주기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는 힘들지만 정치적인 논리와 터널링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다.

 ▲김정호=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는 경영권의 상속이나 승계와 관계된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승계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법대로 돈을 모두 지불하고 승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업이 경영권을 승계할 때 내야 하는 세금은 할증으로 부과되는 것까지 포함해 상속된 재산의 65% 수준이다. 이렇게 높은 세율 때문에 사실상 가업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고 승계를 하더라도 3대만 지나면 사주는 경영권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들이 승계를 위해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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