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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불법복제 한국서 ‘명텐도’는 없다”

백인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4.05 22:26

수정 2009.04.05 22:26

“한국판 닌텐도요? 그럴려면 비디오 게임산업이 일어나야 하는데요. 하지만 지금처럼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수입하고 사 쓰면 태동조차 어렵지요.”

최근 우리나라에선 이른바 ‘명텐도’ 개발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지식경제부에 들러 “왜 우리나라에선 닌텐도 같은 게임기가 나오지 않느냐”는 말을 한 뒤부터다.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일 한국닌텐도의 고다 미네오 사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러나 고다 사장은 “불법복제 프로그램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이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불법복제 때문에 비디오게임시장 자체가 사라지려는 상황인데 ‘명텐도’ 논의가 의미가 있겠냐는 것.

우리나라가 하드웨어를 개발할 능력은 충분하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문제는 게임기에 넣어 작동시킬 콘텐츠다.
사실 콘텐츠 개발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우수한 게임개발업체들이 우리나라에 많기 때문. 고다 사장은 ‘한국에서 불법 복제만 없어진다면 닌텐도 DS와 같은 성공적인 게임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기자의 물음에 한참 망설이다 “우수한 게임개발사들이 한국에 많은 만큼 게임 개발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만 불법 문제가 업체들의 열의를 꺾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사실 불법복제 문제는 게임기 개발의 싹부터 자르고 있다. 한국의 게임기 개발업체인 게임파크홀딩스는 지난 2001년 닌텐도와 같은 휴대용게임기 ‘GP32’를 개발했다. 이 업체는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손잡고 ‘GP32’에 탑재할 게임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제작툴(SDK)을 개발 중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게임을 만들어봤자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매장마다 복제품으로 덮여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느 업체도 게임을 발매하려고 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외국 게임 개발업체인 액티비전은 한국에서 불법 복제를 당해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반다이와 캡콤, 세가 등도 소위 ‘대작 게임’ 이외에는 국내 비디오 게임 출시를 꺼리는 형편이다.

고다 사장은 “업체 하나의 노력만으론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불법복제 업자를 처벌하고 이를 구입하는 소비자를 계몽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효과는 없다고 한다. “한국시장에 ‘닌텐도DS 라이트’의 복제방지 기술을 무력화시키는 불법장치인 R4, DSTT 등이 많이 수입돼 유통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이 제품들을 수입·판매하려던 업자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에 근거해 제소했고 형사처벌 결정이 났습니다.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을 뿐 현재 몇 건의 재판도 진행 중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자구책을 최대한 마련하고 있지만 힘듭니다.” 한국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다 사장은 “지난해 말 열렸던 게임산업진흥 간담회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국에서의 게임 불법복제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이를 근절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불법 게임물 단속 및 조치를 민간단체인 저작권보호센터에 맡겨두고 손을 놓고 있다. 그나마 이 가운데 게임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은 고작 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실 불법복제는 ‘게임인구 확대’라는 닌텐도의 목표에 큰 위협이 되는 존재다. 그러나 그러기 앞서 한국 비디오 게임시장의 성장에도 독약이다.

고다 사장의 마지막 말은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 “그나마 있는 시장에 불법복제가 일상화되는 것은 절망적입니다. 소비자들에게는 눈앞의 이득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국내 게임산업의 맥을 끊게 되는 일입니다.
다양한 게임을 향유할 기회를 빼앗기는 거죠.”

/fxman@fnnews.com 백인성기자

■고다 미네오 사장은?

고다 미네오 사장은 대학을 졸업한 지난 1983년 닌텐도에 입사해 27년째 닌텐도에 몸담고 있다. 유럽,호주지역 세일즈 담당을 거쳐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와 중동 신규 판로를 개척하는 등 아시아 시장을 두루 거쳤다.
지난 2006년 한국닌텐도가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대표직을 맡고 있다.

◇ 약력 ▲1983년 닌텐도 입사 ▲2002년 닌텐도 아시아시장 영업추진 담당 닌텐도 유럽, 호주시장 세일즈 담당 ▲2005년 닌텐도 인도, 중동 신규판로개척 담당 ▲2006년 한국닌텐도 설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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