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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남는 것 없는 ‘장사의 속사정’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5.26 22:29

수정 2009.05.26 22:29



유·무선 통신시장의 이상과열 현상은 ‘경품 퍼주기’에서 잘 드러난다. 모 통신업체는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3년 약정을 하면 3개월 공짜사용에다 42만원 현금경품을 내걸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월 평균 요금이 3만원이니 연간 예상매출액인 108만원의 절반을 현금과 공짜서비스로 돌려주는 셈이다. 업체들이 가입자 숫자 불리기에 얼마나 혈안이 돼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공짜경쟁으로 몸집 불리기

최근 KT 직원들은 서울 명동 한 복판에서 홍보 전단지를 들고 나섰다. 이동전화 판매용 홍보물인데 휴대폰을 공짜로 주겠다는 것은 기본이다.
가입비도 면제해주고 초고속인터넷과 함께 쓰면 이동전화 기본료도 절반값으로 할인해주겠다고 강조한다. 코 앞으로 다가온 KTF 통합(6월2일)을 앞두고 이동전화 가입자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5월말까지 10만명 가입자 증가를 목표로 세웠다” “직원 1인당 이동전화 20대, 초고속인터넷 10회선을 판매하라는 내부 목표가 할당됐다”는 말도 심심찮게 흘러 나온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입자가 늘어난다던 SK텔레콤. 웬만해선 직원들이 할당판매에 나선 일이 없지만 최근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판매압력을 호소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LG그룹 통신 3사는 가입자를 최대한 늘려야 KT-SK텔레콤 2강 체제에서 버틸 수 있다는 생존위기를 느끼고 있다. LG파워콤 영업점들은 30만∼40만원의 현금경품은 예사로 준다. LG텔레콤도 이동전화 고액사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정액제 상품을 내놓고 공짜 휴대폰도 뿌리고 있다.

■통합KT 나서기 전 선제대응

업계에서는 최근 통신시장의 이상 과열이 통합KT 출범에 미리 대응하는 선제공격이라고 분석한다. KT의 3만6000여명 직원이 KTF 통합 이후 이동전화 시장 경쟁에 본격 가담하기 전에 대응한다는 것.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업계는 KT 직원들의 ‘휴먼 네트워크 판매방식’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KT가 지난 2002년 월 1000원가량 전화요금을 추가로 내면 시외전화를 무제한 쓸 수 있는 상품을 내놓고 전직원을 동원했더니 1년새에 무려 440여만 가입자가 이 상품에 가입했던 일이나 KT의 이동전화 재판매로 순증가입자의 절반 이상을 쓸어가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KT가 이동전화 마케팅 경쟁을 하지않겠다고 수차례나 밝혔지만 KT 직원들이 이동전화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는게 현실”이라며 “통합 후에는 아무래도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강화 정책을 쓸게 뻔하기 때문에 통합 전에 가입자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 “과열경쟁, 소비자에게 나쁠 것 없다?”

과거에는 이동전화 시장이 과열양상을 빚으면 정보통신부가 보조금 지급 금지 정책으로 시장을 식혀주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보조금 규제가 사라지면서 정부도 과열시장을 식혀줄 직접적인 정책수단이 사라졌다.

방송통신위원회 한 관계자는 “시장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정책수단은 없고 과열경쟁이 부당하게 이용자를 차별하는 것인지를 법리적으로 따져 이용자 차별현상을 시정하도록 하는게 과열경쟁에 대한 진정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방통위는 최근들어 치열한 시장경쟁이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득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가 통신 요금인하를 유도하기도 쉽지 않은데 소비자가 기업의 마케팅 비용으로 휴대폰을 싸게 구입하거나 초고속인터넷 요금을 싸게 쓸 수 있으면 소비자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통위는 최근의 통신시장 과열경쟁이 그닥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하고 진정책을 쓰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 한 전문가는 “마케팅 비용으로 혜택을 보는 소비자는 이동전화와 초고속인터넷 회사를 자주 옮겨다니는 소위 ‘메뚜기족’일 뿐 대부분의 소비자는 메뚜기족의 비용을 보전해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시장과열에 대한 정부의 진단이 빗나가 업계의 과당경쟁이 근절되지 않고 매번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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