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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대체 ‘아이핀’을 아시나요?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5.31 22:04

수정 2009.05.31 22:04



인터넷 상에서 주민번호 대신 쓰는 개인식별번호 ‘아이핀(i-PIN)’이 국민들한테 외면받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이 ‘아이핀’을 잘 모르고 있는 데다 가입절차가 번거로워 굳이 아이핀을 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기 때문. 또 민간기업들이 아이핀 도입을 꺼리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아이핀은 주민번호 없이 본인임을 입증해 주는 개인식별번호다. 지난해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불거지면서 하루 평균 이용자수가 1만∼5만명 이상인 모든 민간기업 사이트들은 올해부터 아이핀 도입이 의무화됐다.

■인터넷 세상에서 외면받는 ‘아이핀’

지난달 31일 방송통신위원회 및 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민간 아이핀 누적발급건수는 87만5559건이고 아이핀이 적용된 민간 사이트는 256개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인구가 3000만명이 넘는 현실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사용자가 가입하기 번거롭다는 게 첫번째 이유로 꼽힌다. 기존에는 주민번호를 입력하면 곧바로 회원가입이 가능하지만 아이핀의 경우엔 별도로 아이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은 뒤 본인 인증을 받는 절차를 한번 더 거쳐야 한다. 인식부족 탓에 ‘개인정보를 오히려 한번 더 제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부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 상당수 인터넷 이용자들이 이미 주민번호로 회원에 가입해 있다는 점도 이유다. 아이핀으로 다시 전환해 별도의 계정(ID)을 만들 필요성이 없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한 관계자는 “아이핀을 도입했지만 개인들도 꼭 써야하는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핀으로 가입하는 사람이 하루기준으로 전체의 0.3%도 안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걸림돌도 많다. 쇼핑몰 등에서 유료결제나 성인콘텐츠 성인 인증 등에선 여전히 주민번호가 필요하다. 현 인터넷 구조에선 주민번호를 쓰지 않고 완전히 아이핀으로 대체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민간기관에서 아이핀을 발급하는데 이들이 해킹당할 경우에 대한 우려도 크다. 위험성은 주민번호가 유출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주민번호나 전화번호, 신용카드 번호가 유출되면 타인이 도용해 아이핀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핀은 단지 주민번호 유출에 대한 방어수단이지 주소, 전화번호 등 다른 정보는 보호하지 못 하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전문가는 “실제로 아이핀의 식별 아이디나 패스워드를 만드는데 유추하기 쉬운 것으로 조합하거나 다른 사이트에서 이용하는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보안 위험성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사업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

민간 사업자들도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아이핀 인증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을 이중으로 들여야 한다. 여기에다 결제, 인증시스템도 이에 맞게 바꿔야 한다. 아이핀 인증기관에 이용료도 내야 하고 휴대폰 인증시 비용도 이동통신사에 내야 한다. 특히 아이핀으로 한 업체에 회원 가입하면 다른 사이트까지 통합이용할 수 없는 것도 아이핀을 꺼리는 이유다.

사정이 이러니 사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저조하다. 아이핀은 방통위 소관 제도인데도 대형 통신업체들이 도입하지 않고 있다. 온라인 가입자가 2000만명에 달하는 SK텔레콤, KT 그룹은 현재 아이핀 도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이통사 중에서 처음으로 아이핀을 도입한 LG텔레콤 관계자는 “하루에 3000∼4000명 정도 회원가입을 하는데 아이핀은 3∼4건밖에 안된다”며 “아이핀의 필요성과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1200개 업체 내년 3월까지 의무 도입해야

하지만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이 같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 측은 “주민번호 대체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높다”며 계획대로 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지난 3월 마련한 ‘아이핀 활성화 대책’이 본격 추진되면 보급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방통위는 우선 이달 중에 의무도입 대상 사업자 및 해당 사이트 1200여개를 공시한다. 아이핀 도입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다. 이렇게 공시하면 해당되는 사업자들은 내년 3월까지 아이핀 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또 연관 사이트들의 통합 사용이 안됐던 기존 아이핀의 문제점을 개선한 ‘아이핀2.0도 보급한다.
오상진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아이핀 의무 사업자가 6월에 발표되고 아이핀2.0이 보급되면 도입건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2015년에는 모든 민간분야에서 아이핀 도입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그러나 계획대로 아이핀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국민 인식 확산과 보안성을 강화하면서 이용절차를 간소하게 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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