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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 정보가..” 法도 대책도 없다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6.15 09:39

수정 2009.06.14 22:18

#대학생 이수진씨(가명·25)는 올해 초 국내 대형 포털의 홍보, 가사 등 도우미 관련 동호회 사이트에 가입했다. 업계 정보도 알고 일자리가 있으면 소개도 받기 위해서였다. 회원이 3만명 정도 되는 동호회인데 회원가입 때 주민번호부터 개인 신상정보를 많이 요구했지만 업무 특성상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씨는 몇 개월 전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유흥업소에서 일할 생각이 생각이 없느냐’는 등의 문자메시지(SMS)를 받으면서 크게 당황하고 있다. 동호회 운영자 측에서 돈을 받고 개인정보를 팔아넘긴 것으로 보고 이씨는 최근 경찰에 신고했다.

#주부 김정화씨(가명·41)는 지난 4월 파일공유(P2P) 사이트를 보다 이상한 파일을 발견했다.

대도시 중·고교생 전문학원의 학생, 교사들의 개인정보가 담긴 파일이었다. 파일엔 학생, 학원 교사 등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 수천건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 김씨는 누가 고의로 파일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주민번호 등 내 개인정보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심지어 개인정보들이 음지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다. 개인정보를 해킹하기도 하지만 돈을 벌 목적으로 내부자가 고의로 빼돌리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아무도 유출된 개인정보의 실태와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개인정보 침해사고를 막기 위한 정책들이 수립되고 있지만 현실에선 먹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절대 다수 기업은 보안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올 들어 개인정보 침해사고도 크게 늘고 있다.

14일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1∼4월 개인정보침해 사건이 1만278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특히 같은 기간 주민번호 등 타인정보의 훼손, 침해도용 건이 2247건으로 급증해 전체 개인정보침해 건의 17%를 차지했다. 지난해(3만9811건)에는 주민번호를 타인이 훼손하거나 도용했다고 신고된 건이 전체 신고건수의 25%나 차지했다. 올 들어선 경찰 수사를 의뢰하는 건수도 크게 늘었다.

정연수 정보보호진흥원 민원서비스팀장은 “올해는 주민번호 등 이용자정보를 무단 제공하거나 무단 이용하는 등의 사건이 많다”며 개인정보 침해 증가세를 우려했다.

이 같은 현실은 무분별하게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에서 빚어진 것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부동산, 여행, 취미 등 웬만한 소규모 사이트조차 작은 정보 하나라도 얻으려면 일단 회원가입부터 요구한다. 이때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일은 당연시된다. 이미 인터넷상에 올린 내 정보는 더 이상 내가 관리할 수 없는 정보가 돼 버린다. 이전 정보는 언제든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나를 이용하려 들 수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특히 인터넷 동호회 등 카페, 소규모 사이트는 ‘개인정보 사각지대’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소비자원에 따르면 분야별 주요 223개 웹사이트의 91.9%가 주민번호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대책도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주민번호 대체수단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아이핀은 인터넷에서 인식부족 등의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

급성장한 인터넷 사회에 입법 체계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탓에 국내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벌어져도 해당 업체에 대한 처벌은 ‘법률 미비’를 이유로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직원 개인 차원의 범죄 또는 고도의 기술을 이용한 해킹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겪은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옥션,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GS칼텍스(유통 미수) 등 대기업에서 25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해킹당해 유출되거나 고의로 빼돌린 사건이다.
피해를 입은 20여만명과 기업들은 2000여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백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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