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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나눈 AT&T-애플를 배우자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8.16 22:39

수정 2009.08.16 22:3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통신보고서(Communications Outlook 2009)는 한국이 지난 2007년 297억8800만달러어치의 통신장비를 수출해 30개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수출액이 1200%나 늘었고 연평균 28.3%의 성장률을 기록해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의 놀라운 성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통신망 덕분이다. OECD는 올해 통신보고서에서 “세계 통신시장의 주요 성장 축은 △모바일과 △초고속인터넷”이라고 꼽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3년 모바일과 초고속인터넷 성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등 세계시장 보다 5년 이상 앞서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선 통신망 덕분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장비개발 업체들이 경쟁국보다 한발짝 빨리 제품개발과 수출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 ICT성장과 흐름을 주도하며 국내 ICT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통신업계가 최근 성장세에 빨간불이 켜졌다. 기존사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수익사업은 찾지 못하고 있다.

ICT전문가들은 모바일과 초고속인터넷을 융합한 4세대(G) 이동통신이 새로운 성장사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는 4G 기술로 와이브로 기술을 선택했지만 기술만 있을 뿐 사업모델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통신업계

미국 AT&T는 애플의 ‘아이폰’을 도입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AT&T가 올 2·4분기에 새로 유치한 고객 중 60%나 되는 84만명이 ‘아이폰’ 가입자였고 이들은 AT&T의 무선사업 부문 매출을 10% 늘려 준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그러나 AT&T도 ‘아이폰’을 도입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AT&T가 독식하던 무선인터넷 콘텐츠 사업을 애플에 양보해야 했고 마케팅 전략에 따라 독단으로 결정하던 휴대폰 보조금 액수도 애플과 협의하기로 하는 등 이동통신사업의 주도권을 내준 것. 그대신 AT&T는 실익을 얻었다.

ICT 업계 한 전문가는 “앞으로 통신산업은 무선인터넷망 접속수익이나 콘텐츠 유통에서 나오는 수익을 통신회사들이 독식할 수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국내 통신업체들은 콘텐츠업체나 금융·유통업체와 수익을 나눠야 하는 차세대형 사업모델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과감한 신규사업 도입과 실험을 가로막고 있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와이브로나 인터넷IPTV(IPTV)가 활성화되려면 다양한 콘텐츠와 단말기, 유통 제휴가 필요한데 통신업계는 제휴대상 기업과 수익을 나누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아직 인색하다는 것이다.

■정부-업계, 불신의 악순환

우리나라 ICT산업은 전형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기반으로 통신서비스 업계와 단말기 업체들이 손잡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고 시장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로 성장해 왔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의 신뢰가 필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와 업계가 서로 못믿겠다며 등을 돌려 불신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통신업계가 신성장 동력인 와이브로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한다”며 “제재를 통해서라도 투자를 늘려야한다”고 벼른다. 반면 와이브로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은 “지난 2006년부터 와이브로에 1조5000억원 가까운 투자를 쏟아부었지만 3년간 매출이 2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신규사업 투자는 시장의 발전추세에 맞춰 기업이 필요에 따라 조절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통신요금 인하에 대해서도 불신은 팽팽하다. 업계는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한 카드가 필요할 때마다 통신요금을 꺼내든다”며 “해마다 반복되는 요금인하 정책 때문에 투자나 사업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고 불만스러워 한다.

지난해에 서민생활 지원에 나서는 정부정책에 맞춰 저소득층 이동전화 요금감면을 확대해 올해까지 2830억원의 요금인하 효과를 냈고 지난 2007년에도 요금인하 정책에 맞춰 3103억원의 인하효과가 있는 망내할인 상품을 선보였지만 올해 다시 요금인하 압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이동통신 기본료 인하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며 압력의 고삐를 죄고 있다.

■시장기능 살릴 ‘주체별 제역할 찾기’ 시급

통신요금 조정이나 투자비 결정은 시장의 몫이다.

통신시장의 경쟁상황 평가와 경쟁모델 마련, 신규 통신산업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해 산업을 이끌어 가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통신산업에서는 이런 역할이 뒤섞여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경쟁에 의한 통신요금 인하 기능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털어놨다. 정부가 직접 요금인하 정책을 내놓기 때문에 기업들끼리 요금을 내리는 경쟁을 하면 통신사업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요구하는 투자부문과 투자액수를 맞추는데 급급해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투자는 말도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옛 정보통신부에서 통신정책을 담당했던 한 고위공무원은 “정부가 정책 로드맵 작성과 기술개발을 독려하는 제 역할을 찾고 기업이 경쟁을 통해 신사업과 요금인하 전략을 내놓는 등 기업과 정부가 각각 제자리를 찾는 것이 위기의 한국 통신산업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 처방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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