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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 직업 1순위 애널리스트.. ‘그들이 사는 법’

안현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1.29 22:06

수정 2009.11.29 22:06


#이달 초 정보통신(IT)업계의 라이벌인 A사와 B사의 주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A사는 연이은 상승세로 함박웃음을 보인 반면 B사는 하락세로 전환하며 울상을 지었다. 사업내용과 전략, 상품이 비슷한 두 업체의 주가가 서로 다른 길을 간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하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그것. A사는 향후 성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B사는 예상을 밑도는 실적으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가 각각 한 단계 하향 조정됐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위상과 위력를 실감케 하는 내용이다.


기업을 분석하고 향후 실적을 예측하는 증권사 리서치 센터 내 애널리스트는 정보력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기관과 일반 투자자의 투자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상장사 주가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특히 억대 연봉의 전문직이라는 메리트로 인해 애널리스트는 신규 취업자들이 선망하는 직업 1순위로 꼽히고 있다.

국내 증시를 좌우하는 애널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

국내 자본시장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의 롤 모델(Role Model)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나이 34∼36세의 경력 5∼6년차의 인물이다. 이는 본지가 20개 증권사 513명의 인적사항을 조사해 도출한 결과다.

29일 본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애널리스트의 평균 연령은 35세로 나타났다. 나이대별로도 30대 이상 40대 미만이 142명으로 가장 많았다. 평균경력은 5년. 1∼10년 사이의 경력을 가진 애널리스트가 조사 응답자(355명)의 3분의 2(266명)에 달했다. 가장 많은 애널리스트를 배출한 학교는 연세대학교(85명)와 서울대학교(84명). 애널리스트 3명 중 1명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를 전공했다.

■6시 기상…밤 10시 퇴근

‘30대 중반의 나이, 5년의 경력.’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이 시기는 황금기로 통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역량을 최고조로 발휘할 수 있어서다. 반면 그만큼 업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34세의 나이에 5년간 애널리스트 업무를 하고 있는 우리투자증권 유익선 투자전략 연구원의 일상에서도 드러난다.

유 연구원의 아침 기상 시간은 아침 6시. 국내외 증시 상황을 점검한 후 오전 7시30분 아침 회의에 늦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이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서울 여의도 근처에 살아 집이 먼 동료들에 비해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점이 그나마 위안점이다.

이후부터는 개인업무. 핵심고객이라 할 수 있는 자산운용사가 요청한 자료를 먼저 작성하고 당일 보고서까지 마무리하기 위해선 일분일초도 아껴 써야 한다. 오후 6시 일과를 마치고 내일 할 일들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한밤으로 훌쩍 지나간다. 그의 퇴근 시간은 보통 오후 10시에서 새벽 1시께다. 하루 11∼14시간의 살인적인 업무량이다. 고된 업무를 마친 그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라며 우스갯소리로 ‘우리 3D업종’이라는 농담을 한다는 애널리스트의 말이 실감난다.

유 연구원은 “점차 늘어나는 업무량이 애널리스트 사이의 스트레스 해소법도 바뀌고 있다”며 “과거처럼 동료들과 함께 술을 먹기보다는 체력을 생각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말했다.

■‘매도’의견 인정 못하는 투자 환경

애널리스트의 삶이 힘든 점은 고된 업무 때문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다른 점에서 어려움과 스트레스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들은 말한다.

대표적인 게 비판의 목소리에 관대하지 못한 투자환경이다.

실제로 증권사의 한 해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을 담은 것은 전무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항상 외부로부터 ‘중립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혹여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내리거나 목표주가를 내려도 투자기업의 경영전략이나 비전, 재무상황을 점검하기보다는 주가가 떨어진다며 무조건 애널리스트를 욕하는 게 국내 투자문화의 자화상이다.

이에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개인은 물론 기관들마저도 단기적 시각에서 일희일비하는 투자문화는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투자 문화에 그들은 “업무나 위치상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은 매수나 목표주가 상향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목표주가 하향이나 매도의견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내 증시 상황에 우려와 한탄을 금치 못한다.

유 연구원도 “개인은 물론 펀드 매니저들에게 수익 창출은 중요한 문제인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접근 방식은 앞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상 이해가 상충하며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 향후 장기적 관점에서 제시한 목표주가를 3∼4개월이라는 단기에 도달해야 한다는 식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일부 연구원들이 비교적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외국계 증권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잦아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애널리스트 자격증 도입 효과는 ‘제한적’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증권사 내부에선 ‘별동부대’로 불린다.

증권사 기존업무와 이해상충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업무특성상 독립성을 가지고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인원선발도 리서치센터장에게 일임되는 게 보통. 교육도 후임이 선임에게 배우는 도제(徒弟)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 리서치센터 선발 및 도제식 교육 방식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애널리스트 등록과 관리 업무를 맡아온 금융투자협회가 관련 자격증 제도를 신설했다. 오는 2011년 2월부터는 애널리스트 자격증 획득이 증권사 연구원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로 등장한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 눈치다.

이미 1세대 애널리스트의 노력으로 리서치센터 내 도제 방식 교육은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서다.

큰 문제 없이 우수 인력을 선발해 육성해온 만큼 애널리스트 사이에선 ‘왜 그런 제도를 만드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애널리스트 자격증 도입이 일종의 신임 연구원 질적 향상에는 다소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도 향후 애널리스트 실력 증진으로 연결될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자격증만으로 증시를 제대로 읽고 종목을 정확히 분석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분석실력이 하루 아침에 자격증하나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시장을 보고 느끼고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제대로 기업과 시장을 읽을 수 있다”며 애널리스트 자격증으로 대표되는 획일화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always@fnnews.com 안현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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