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여객선 침몰참사] 10년전 만든 ‘재난대응 실무매뉴얼’ 없앤 MB정부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2 17:46

수정 2014.10.28 04:54

#1. 지난 2005년 4월. 식목일 전후 발생한 산불이 비무장지대(DMZ)까지 번졌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통일부와 국방부를 통해 북한 당국에 소방헬기 투입 의사를 통보하고 협조를 요청, 곧바로 허락을 받아냈고 분단 이후 최초로 우리 산림청 헬기가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DMZ 안으로 들어가 산불을 완전 진화했다. 그리고 이는 곧 '대응 매뉴얼'로 만들어졌다.

#2.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탑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건 직후 '승객 전원 구조'라는 소식부터 사고 접수 상황, 승선객과 사망자·구조자·실종자 수 등 중앙재해대책본부에서 발표하는 사실상 모든 수치와 정황에서 오류가 발견됐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사고 자체의 비극을 넘어 수습 과정에서의 부실함이 문제가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참여정부 시절 이미 NSC라는 상설기구를 통해 안보·재난 등 4개 분야의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을 총괄해 오던 것을 MB정부 들어 폐지한 것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의 안전 정책, 위기대응 능력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비용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기존의 제도와 방식을 고쳐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면서 "위기 시 현장과 부처 간 협업과 통일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더욱 강력한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군은 물론 주요 부처와 경찰, 소방본부, 한전(원자력) 등이 망라된 국가위기대응 시스템이 존재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이를 폐기해 놓고 다시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안전에 관한 매뉴얼은 정권과 상관없이 유지되고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은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에 모든 국가의 위기 관리시스템을 매뉴얼화해서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DJ정부 말 서해교전이 발발했을 당시 3시간이 지나서야 대통령께 교전상황을 보고하는데 군대에서 쓰는 상황판을 들고 올 정도로 비상대응체계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면서 "그래서 참여정부 들어 국가위기관리시스템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완전 폐기됐다"고 전했다.

참여정부 시절 만든 NSC는 통합적 국가위기관리체계로 위기상황 발생 시 대처요령, 초동단계 지침, 위기발령 체계 전파, 대국민 홍보방안 등 종합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었다. 북핵 등 우발사태, 산불재난 등 위기 상황에서 정부 각 부처나 기관이 대응해야 할 행동절차와 조치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을 수립했으며 실제 NSC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270여개의 실무 매뉴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MB정부는 정권 초기 NSC를 비상임기구로 전환함과 동시에 안보 분야는 청와대가, 재난 분야는 안전행정부(당시 행정안전부)가 맡도록 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들어 행안부는 안행부로 개명, 방점을 행정에서 '안전'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수습에서 정부의 무능이 지적되자 범국가 차원의 재난청을 만들자는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는 것.

재난 컨트롤타워 관련 법안 제시가 현 정부에서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정부와 국회가 평가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지난해 12월 이미 발의됐다. 국가 위기 상황을 조정·총괄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국가위기관리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국가위기관리기본법도 계류 중이다.

이는 정쟁에 밀려 법안 처리가 늦어진 것도 문제지만 실은 원래 있던 시스템을 없애고 다시 만드는 뒷북 법안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발생 가능한 모든 위기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사고 발생 시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대응수칙을 다 마련해 놓고 있는데, 그 같은 작업을 참여정부 시절 상당부분 구축해 놓았던 것"이라며 "이를 MB정부에 와서 무력화시키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대응책 없이 있다가 이런 사고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새누리당 관계자는 "있는 매뉴얼을 없앴다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 "그보다는 기구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제도를 수정·완비한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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