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4·②) 예산은 어디로..국회사무처 예산 혈세 구멍

정은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02 17:54

수정 2014.09.02 17:54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4·②) 예산은 어디로..국회사무처 예산 혈세 구멍

#. "기본적으로 600만원이라는 돈은 적은 돈은 아니라는 거지요.웬만한 기업의 간부급 사원 월봉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것을 아무 근거 없이 특위 위원장이든 상임위원장이든 활용한다는 것은 저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기 때문에 좀 바꿔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

#. "전체적으로 다른 상임위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게 판단하고 이것은 일단 그런 식으로 하고. 그 다음 것 뭐 해야 하지요?"(새누리당 윤상현 의원)

2014년 4월 16일.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국회 특별위원장 경비 월 600만원을 두고 운영위원 간 설전이 벌어졌다. 2014년도 정부 예산안 원안에 따르면 연간 13억2000만원의 운영비가 특별위원회에 지급되는데 이 중 위원장 경비 월 600만원은 법적 근거가 없으니 이참에 만들자는 법안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였다.

설전 끝에 당시 소위원장을 맡은 윤상현 의원은 다른 상임위와의 종합검토 필요성을 제기하며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현재도 이름만 걸어둔 채 활동을 하지 않는 '무늬만' 특위위원장에게 월 600만원의 경비가 지급되고 있다.

이같이 국회가 방만하게 예산 운용을 하면서 국민의 혈세(血稅)가 줄줄 새고 있다. 특히 국회가 '한지붕' 아래 거주하는 국회 사무처에 대한 국정감사는 소홀히 하면서 정부 견제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는 연 5041억원 규모의 예산(2014년 예산안 기준)을 사용하지만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심사하는 국회 예산도 정부 예산과 비교하면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국회 자체 예산부터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베일에 싸인 국회 예산 곳곳 낭비

2일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국회에 편성된 2014년 예산안도 곳곳에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특히 국회에 편성·확정된 2014년 최종 예산안 내역은 항목이 △의정활동지원 △국회사무처 운영 △국회도서관 운영 △예산정책처 운영 △입법조사처 운영 △국회행정지원 등으로 뭉뚱그려져 있다. 세부 구체적인 항목이 공개된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과 달리 국회 예산은 꽁꽁 숨겨져 있는 셈이다.

그나마 국회 예산이 누수되고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곳은 2014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해 국회 운영위원회가 사전에 심사한 내역인 '국회 운영위원회 예비심사보고서'다. 국회 운영위원회 예비심사보고서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펴낸 '국회 상임·특별위원장의 활동비 실태와 개혁방안'에 따르면 국회가 각 상임위 및 특위를 운영하는 데 지원하는 '국회 위원회 운영지원' 내역부터 불투명하게 집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별위원회에 대한 지원 경비는 특위 활동 대다수가 무위에 그칠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단골손님이다. 최근 '용두사미'로 끝난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처럼 대다수의 특위가 거창하게 출범된 후 유야무야 사라지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문제는 특위 운영 지원경비가 연간 13억원으로 전체 상임위 지원경비 가운데 두 번째로 많지만 세부 집행 내역이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지원금액이 크면 세부 집행 내역이 자세히 공개돼야 하는데 파악이 불가능하니 그게 문제"라면서 "국회의원과 관련된 영역에 대해 그런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또 국가적인 사고나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특위가 우후죽순 출범하지만 대다수 특위가 빈 손으로 끝난다는 점도 특위 지원경비 논란을 부채질했다. 실제 올해 출범했거나 활동 중인 특위 7곳 가운데 매주 회의를 여는 특위는 창조경제 특위가 유일한 실정이다.

아울러 지난 4월 운영위 소위에서 설전을 벌인 특별위원장 경비 600만원 지원처럼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은 특위 활동에 대해 경비를 지급할 수 있는 내용을 삽입해 문제를 보완하자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운영위 소위에서 한 차례 이 법안에 대한 격론이 벌어진 이후 이 법안은 운영위 소위에 계류됐다. 당시 경비 600만원 문제를 제기한 새정치연합 홍익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특별위원장 경비는 특정업무경비와 똑같은 성격으로 이를 '쌈짓돈' 쓰듯 써서는 안된다"면서 "실비 정산 형태로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회 사무처는 "상임위 및 특위 운영지원 경비의 경우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및 공무원 보수 규정을 준용하거나 국회법 내규에 따라 지급한다"고 밝혔다.

■중복 지급·수의계약 '관행'

국회 예산이 동일 항목에 중복 편성되거나 국회가 발주한 연구용역이 100% 수의계약되는 사례도 드러났다.

본지가 새정치연합 장하나 의원실에서 입수한 '2013년도 정책연구용역' 원본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국회가 발주한 '의정활동지원 연구용역'과 '입법활동연구과제용역'의 100%가 수의계약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의계약은 임의로 적당한 상대자를 선정해 체결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특히 입법활동연구과제용역의 세부 데이터 내역을 보면 31개 과제에서 26개 과제가 한국의정연구회, 입법정책연구회, 한국의회발전연구회가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국회의원 보좌진이 조직하거나 포함된 모임으로 알려졌다. 장하나 의원실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정치적·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입법활동연구과제용역에 편성된 예산은 5억5000만원, 의정활동지원 연구용역에는 3억4600만원의 예산이 각각 배정됐다.

의원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복사용지, 토너, 드럼 등 전산소모품에 대한 중복 예산이 버젓이 편성돼 자체 예비심사보고서에서 지적받는 일도 벌어졌다.

운영위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기타입법활동지원에 의원사무실의 전산소모품 구입을 지원하는 경비가 3억7800만원 편성됐지만 이는 의원사무실운영 예산안에도 1억9200만원 배정됐다. 또 입법활동지원 예산안에 25억5000만원의 정책자료발간비가 편성됐지만 의원사무실운영 예산안에도 의원정책물홍보비 명목으로 13억5000만원이 잡혔다. 최소 15억원의 세비가 낭비된 셈이다.

■국회 사무처 국정감사는 '뒷전'

가장 큰 문제는 국회가 집행하는 예산 등에 대한 국정감사는 뒷전으로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회 사무처를 소관하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겸임 상임위라는 구조적인 문제에도 원인이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국회를 감사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국회 운영위 소속 새누리당 관계자는 "운영위는 다른 부처 국감을 다 끝내고 주로 뒤에 하다 보니 주목도도 떨어진다"면서 "운영위 내에서도 청와대와 국가인권위원회 쪽에 관심이 집중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국회 운영위 소속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우리는 전투준비를 하고 백데이터까지 다 확보해서 국회 사무처를 대상으로 한 국감에 돌입했는데 다른 방은 준비도 안했더라"고 허탈해했다.

이에 따라 내실 있는 국회 사무처 국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 사무처를 전임 상임위로 이관하거나 아예 국회 사무처 국감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운영위는 의사일정 협의 등 운영에 집중하고 청와대와 국회 사무처, 인권위 등 감사 기능을 다른 상임위에 옮기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봐도 독립기관일수록 감사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한다"면서 "이를 국회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