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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 비밀 과학으로 푼다”

이재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9.16 22:11

수정 2014.11.05 01:02



‘교통체증의 비밀을 밝혀라.’

신호등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체증은 왜 발생할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정답과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독일 두이스부르크-에센대학 쉬렌켄 베르크 교수팀, 일본 시주오카대학 다카시 나가타니 교수 그리고 서울대학교 김두철 교수, 고등과학원 이현근 박사.

이들은 자동차의 흐름을 상태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로 정의하고 입자의 운동을 교통상황에 접목해 교통체증의 원인과 결과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이현근 박사는 “그동안 경험적으로 정립돼 있던 교통 이론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 정립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과학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물리학을 활용한 교통체증 연구는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고 진행이 더딘 편이다. 과학자들은 이 때문에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게 교통체증 연구보다 더 쉽다’고 단언할 정도다

■물리학이 말하는 교통체증

고속도로 정체는 왜 생길까. 물리학자들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 이들은 교통 흐름을 원활한 소통인 ‘자유흐름’(기체)과 멈춘 상태인 ‘정체상태’(고체) 그리고 이들의 중간 영역으로 속도는 늦지만 멈추지는 않는 ‘동기흐름’(액체)으로 나눠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물론 교통사고와 고속도로 진·출입로의 존재가 정체를 유발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이런 상황은 논의에서 제외한다.

진·출입이 없고 교통사고도 없는 단일 노선의 고속도로를 가정하자. 이들은 모두 지체나 정체 없이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우리는 속도가 늦어지거나 아예 차를 멈춰야 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상태의 원인을 ‘창발현상’으로 규정한다. 창발현상은 각각의 원인들이 모여 전혀 상관없는 결과를 낳는 현상을 말한다. 불에 타는 성질을 가진 수소 두개가 산소 한개와 만나면 불에 타지 않는 물이 되는 것이 창발현상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창발현상을 일으키는 원인들로 ‘요동’과 ‘밀도’를 지목했다.

요동은 운전을 방해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들을 말한다. 이를테면 담배를 꺼내 물거나 뒷좌석의 아기를 돌아보는 등의 행동이다. 또한 휴대폰을 걸거나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도 요동에 속한다. 이런 운전자들의 작은 행동들은 원활하던 흐름에 조그만 영향을 미치지만 이것들이 뒤로 전달되며 증폭되는 효과가 나타나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담배를 꺼내물다 앞차와 거리가 갑자기 좁아져 급감속을 하고 이것이 뒤 차로 넘어가며 점차 커지는 것이다. 모든 차에서 일어나는 요동은 다르지만 이것들이 모여 교통정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물리학자들은 주장한다.

밀도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도로 안에 밀집된 차량 수를 밀도라고 한다면 많을 수록 요동이 전달되는 효과가 크다. 밀도가 작다면(차간 간격이 충분히 넓다면) 요동은 뒤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밖에도 밀도는 요동의 결과 변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차량이 있다면 뒤에 있는 차들은 밀도가 종종 좁아지거나 넓어지는 것을 반복하며 이들의 행동이 합쳐질 경우 한참 뒤의 도로는 정체현상을 빚기 쉽다.

이 박사는 “각각의 작은 요동들이 죽지 않고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가 정체로 나타난 것이 창발현상”이라면서 “창발현상은 통계물리학 분야의 주된 관심사”라고 소개했다.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나

교통체증을 없애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은 아직 시작 단계다. 또한 그 아이디어들이 교통공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적인 모델을 만들어 실제 대응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박사는 “기본적으로 요동 자체는 아무리 교육을 해도 막을 수 없으며 통제로 이를 줄이려는 시도를 할 경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면서 “때문에 이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통계물리학자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먼저 정교한 모델을 설계한 후 교통체증 예측치를 만들어 내려 한다. 그동안 축적된 통계가 많아 모델만 잘 세우면 교통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박사는 “수식을 기반으로 만든 모델을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해 보는 방법으로 진행될 것”이라면서 “연구의 최종 목적이 정체를 아예 없애는 방향이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주행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시키는 결과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들은 요동을 줄이는 방법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 진출입로의 통제로 명절 교통 체증을 막아보려는 그동안의 시도와는 다른 시각이다. 이를테면 노면상태를 개선하고 곡선주로의 시야를 확보하는 등의 방법이 기본적인 해결책이다.

이런 개선책들은 요동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좀 더 진보된 연구는 최고속도의 가변적 운영이다. 고속도로 상황을 실시간 체크해 구간별로 운행속도를 미세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운전자들에게 교통체증 모델이 계산해 낸 구간별 지정속도를 준수토록 함으로써 가속과 감속을 줄이고 결국 체증을 막아낼 수 있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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