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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나 떨고있니”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20 20:12

수정 2010.01.20 18:18

국내에 상륙한 지 한 달 만에 20여만대 판매고를 올리며 스마트폰 열풍을 몰고 온 ‘아이폰’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시중에서 아이폰 개통 열기가 수그러든 데다 아이폰을 공급하는 KT도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 업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이어서 아이폰 마케팅에 집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미국에서는 벌써 안드로이드폰이 아이폰을 누르고 판매 1위에 올라가고 있어 아이폰 수입업체인 KT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20일 통신 3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 공급되는 국내외 휴대폰 업체들의 안드로이드폰은 줄잡아 25종에 달한다. SK텔레콤이 이미 12∼13종의 안드로이드폰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KT도 8종가량 안드로이드폰 도입계획을 검토 중이다. 통합 LG텔레콤도 5종 이상 안드로이드폰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통신업체들이 연초부터 안드로이드폰 물량공세를 예고하는 있는 가운데 지난해 11월부터 팔리기 시작한 아이폰은 초기 열기가 가라앉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종로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는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아이폰을 개통했는데 최근엔 4건 정도로 줄어들었다”며 “소비자들이 아이폰이라는 개별 모델보다는 스마트폰의 기능에 대한 문의를 더 많이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삼성, 자존심 회복 노린다

세계 2위 휴대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사실 지난해 말 자존심을 구겼다. 종주국인 한국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스마트폰 ‘옴니아’가 ‘아이폰’에 밀려 맥을 못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

삼성전자 관계자는 “판매량을 집계하면 ‘옴니아’의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닌데 언론이나 소비자의 관심이 온통 아이폰에 쏠리면서 세계 최강을 자부했던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의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해 줄 비장의 카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최소 8개 모델 이상 안드로이드폰을 선보여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게 전략이다.

■SK텔-삼성, 아이폰 협공

자존심이 상한 건 SK텔레콤도 마찬가지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SK텔레콤이 KT의 아이폰 공격 앞에 무력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

SK텔레콤의 각오도 비장하다. 안드로이드폰에 모바일쇼핑, 첨단 금융서비스 같은 기능을 장착해 아이폰 바람을 잠재우고 이동통신 시장 주도권을 찾겠다는 전략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SK텔레콤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처를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협공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스마트폰 보조금이나 각종 광고같은 마케팅에서 양사의 협공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가 올해 이동통신 시장의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 아이폰 딜레마

시장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KT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아이폰을 수입해 강력한 마케팅에 나서면서 삼성전자와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아이폰 마케팅을 강화하기가 쉽지 않은 것.

이석채 KT 회장도 지난 연말 손에 들고 다니던 아이폰을 삼성전자 ‘쇼 옴니아’로 바꾸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이런 판에 마케팅 부문에서 분위기를 거스르기가 곤란한 처지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도 모토로라의 안드로이드폰 ‘드로이드’가 휴대폰 판매순위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이폰이 대세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KT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이폰 판매량은 요즘에도 하루 3000∼5000대 정도 유지되고 있는 걸로 안다”며 “그러나 KT로선 아이폰으로 인해 소원해진 국내 휴대폰 업체들을 달래는 문제와 소비자의 아이폰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afe9@fnnews.com 이구순 홍석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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