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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13’ 프로젝트] (5―④) “日은 10년간 투자하고도 연구성과 보채지 않아“

임광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09 16:58

수정 2014.10.28 13:31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 사진=박범준 기자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 사진=박범준 기자

노벨과학상을 받으면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킬 것입니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면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완화될 것입니다."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은 인류와 역사 발전에 기여한 연구에 주어지는 노벨과학상은 우리가 욕심 낼 만한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2010~2013년)을 지냈고 과학계 원로이기도 한 정 이사장은 국내 기초과학연구에 정부가 관심을 가진 것은 2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정부가 기초과학연구 예산을 국가 총 연구개발(R&D) 예산의 40% 수준(현재 35%)으로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과학자들이 의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기초과학을 꽃피우게 하려면.

▲과학자들 중심으로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일반 국민들은 국가적 당면과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아직 다른 나라 기술을 모방해 즉시 응용가능한 산업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태도를 못 버리고 있다. 기초과학은 정부 행정의 후순위로 밀려나 있고, 기업·출연연구소도 투자가 미흡하다. 대학도 응용과학 중심 교과과정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사회풍토에서 기초과학을 꽃피울 수 없다. 정부당국, 출연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 대학 모두 세계를 선도하는 창조적 과학기술 없이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공계 기피현상도 심각한 수준인데.

▲과학 연구자는 월급이 적고 회사가 어려우면 정리 대상이 된다. 이공계 연구자로 진로를 잡으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는 얘기도 많다. 경제·법학·정치계 등이 사회 지도층을 형성해 이공계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기도 어렵다. 부모들도 출세하기 어려운 이공계로 진학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려면 이공계 출신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연구인력의 월급을 올리고 65세 정년을 법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중국은 최고의결기구인 상무위원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질 때도 있었다. 이공계도 정책을 입안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 연구했는데.

▲1960년대 후반 일본 교토대학 초기 시절에는 생활비가 모자라 실험실에서 밤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인정을 받은 후 장학금을 많이 타게 돼 1년 지나자 풍족하게 생활하며 연구할 수 있었다. 내가 연구한 동물발생공학은 수정 능력 획득 인자를 발견하고, 어떤 화학적 구조를 갖는가를 공부하는 것이다. 당시 앞선 연구자가 없고 미개척 분야여서 진척이 더뎌 힘들었지만 끝까지 연구했다. 수정 능력의 연구는 생명 탄생 비밀을 푸는 열쇠여서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하며 미국에서 앙코르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일본 과학 풍토와 우리의 차이는.

▲일본 대학과 연구소는 국가나 기업 지원 없이도 최소한의 연구를 할 수 있는 비용을 제공한다. 많은 연구자들에게 '풀뿌리 연구비'를 지원하고 돋보이는 과학자는 집중투자한다. 7~10년간 연구자원과 인력을 쓸 만큼 지원하고 결과를 따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연구비 따러 동분서주한다. 지원을 받으려면 '국가·산업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연구'라는 단서도 붙는다. 3년 뒤 평가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연구비를 물어내라고 고발한다. 그래서 결과가 안 나올 위험이 있는 연구는 하지 않는다. 쉬운 것, 남이 하는 연구를 하면 책임 추궁도 없다. 이런 시스템에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없다. 정부도 최소한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특출한 과학자는 밀어줘야 거목이 된다. 실패를 통해 성공하는데,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 과학정책의 문제점은.

▲일본은 유명한 이화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분소를 만드는 데 60년이 걸렸다. 초기에는 한곳에 모여 연구하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한국은 기초과학연구소(IBS)가 그 역할을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외부연구소 50개를 사이트랩(연구단)으로 지정해 전국에 분산했다. 과학을 발전시키겠다는 것보다 지자체 이기주의가 앞섰다. 한림원 원장을 할 때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도지사, 지방의원이 나서서 분산시켰다. IBS가 쪼개져 언제 업적이 나올지 걱정이다.

―선진국의 기초과학 접근 방법은.

▲기초학문은 진리탐구다. 일본 교토대는 지금도 물이 진짜 H2O로 이뤄졌느냐를 연구한다. 기초과학 연구자는 이 세상, 우주의 진리를 캐는 소중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기초과학자가 존경받는 문화도 형성돼 있다. 또 한 가지를 잡으면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집념으로 옆은 보지 않고 파고든다.

―국내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분야는.

▲과거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현재로선 10년 내 과학분야 노벨상이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지금의 30~40대가 10년 후에 혜성처럼 나타나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초과학 분야별로 보면 국내에서 강한 입자 물리학 분야가 노벨상에 가깝다. 최근에는 화학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갔고 줄기세포 분야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제적으로 내놓을 업적을 보인 분야는 입자물리학, 소재과학, 줄기세포, 의생명 분야 등이다.

―기초과학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과학기술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과학이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려면 과학자들이 윤리·도덕적 양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자들은 본질적으로 호기심이 많은데 인류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연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자가 유전자 조작으로 메릴린 먼로의 미모, 타이거 우즈의 골프 실력, 버락 오바마의 정치력을 조합한 사람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좋은 부품을 결합해 최고의 경주차를 만드는 것처럼 유전자 조작으로 영화 엑스맨 같은 인간을 만들 수도 있다. 미국 국방부는 40년 후 엑스맨이 현실화된다고 보고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100년 내에 우리 인간과 다른 인간종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어머니 뱃속이 아닌 시험관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과학적인 상상력은 대체로 만화로 먼저 나오고, 이후 소설로 나타난다. 40~50년 후에 인류가 생명공학으로 생명을 조작하는 것이 현실화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것이 진짜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다. 나는 반대한다. 생명공학은 병을 치료하는 쪽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 유전자를 바꿔 자손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엑스맨을 인간이 만들어 자손에게까지 유전이 됐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전자 조작이 만연되면 유전자 상류층과 유전자 하류층이 구분될 수도 있다. 과학은 위험이 많다. 이런 위험을 막는 최후 보루는 과학자의 도덕의식과 책임감이다.

■정길생 이사장은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은 1983년 국내 최초로 수정란 이식 기술을 도입해 한우가 젖소 송아지를 낳는 데 성공했다. 당시 건국대 정 교수팀은 두산개발과 공동연구로 젖소 수정란을 한우에 이식해 3마리가 수태해 출산을 하게 했다.

또 국내 최초로 사람의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켜 출산시킨 기술도 그의 연구에서 나왔다. 이 기술들은 바이오 산업발전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2010~2013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을 맡아 국내 기초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300여명의 원로 과학자 및 지식인들과 나눔 실천단체인 '참행복 나눔운동'을 발족시키고 이사장을 맡아 이달부터 본격활동에 들어갔다.
현재 다문화가정 자녀, 탈북 고아,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장학금 및 멘토링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특별취재팀 윤정남 팀장 정명진 김병덕 임광복 이병철 기자

■약력 △73세 △경남 산청 △건국대학교 축산학과 농학사 △교토대학교 농학박사 △대한생식의학회 회장 △과학기술처 생명공학연구기획단 단장 △한국축산학회 회장 △농림부 21세기농정자문위원회 위원 △제16대 건국대학교 총장 △제6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참행복 나눔운동 이사장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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