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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표류하는 국가재난통신망] (下) 자가망 vs 상용망 논란에.. ‘국민생명’은 어디로?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3 17:18

수정 2014.10.28 04:30

[세월호 참사, 표류하는 국가재난통신망] (下) 자가망 vs 상용망 논란에.. ‘국민생명’은 어디로?

국가재난안전무선통신망(재난망) 구축 사업이 12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재난망 도입을 지체할 수 없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성 논란 등으로 재난망 사업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자가망 중심의 사업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이미 구축된 상용망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면적인 발상의 전환부터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제성 발목 잡혀 '안갯속'

23일 안전행정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국가재난망 사업은 지난 2003년 340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대형 재난·재해 시 일관된 통신망 확보로 위기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하지만 재난망 사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자가망 방식에 1조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돼 10년이 넘도록 비용부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자가망은 기존 통신사업자들이 구축한 상용 통신망과 달리 별도의 재난용 전국 통신망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8년에는 감사원과 한국경제개발원(KDI)이 특정 기술 방식의 자가망을 구축하면 기술독점에 따른 폐해가 있을뿐더러 구축비 및 향후 운영비 과다 문제도 지적돼 사업이 중단된 바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지난 2011년 기술검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테트라는 9000억원, 와이브로는 1조2000억원 정도의 사업비가 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2011년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는 재난망 사업을 재개해 해외 기술인 테트라와 국산 기술인 와이브로를 적합 기술 후보로 결정하고 지난해 KDI를 통해 2차 예비타당성 조사를 의뢰한 상태다. 당초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난해 상반기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지금까지 흐지부지 지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KDI의 2차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도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안전행정부가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전부터 우리도 KDI에 예비타당성 결과 통보를 수차례 재촉하고 있다"며 "예비타당성 결과를 알고도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들이 퍼뜨리는 낭설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자가망 고집 말고 상용망 검토를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고를 이유로 재난망 구축이 더 이상 경제성 논란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동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질 재난망 사업을 이번 참사를 명분으로 밀어붙이기식으로 강행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경제성과 기술적 진보성, 구축 시간 단축 등을 두루 고려해 상용망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적 재검토가 더 시급하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테트라나 와이브로나 자가망 방식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실내와 지하 통화권 확보도 쉽지 않다"며 "게다가 기술방식이 한 가지로 정해지면 정전이나 통신시설 파괴 시 재난망이 '블랙아웃'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가망보다 이미 구축돼 있는 상용망을 포함한 다양한 통신기술이 서로 연동될 수 있도록 연동장치 개발과 재난발생 시 대응체계인 표준운영절차를 정립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재난망 관련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자가망만 고집할 게 아니라 300여개 정부기관 중 경찰, 군 등 필수 기관 외에는 기존 상용망을 폭넓게 활용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해야 재난망 구축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며 "상용망을 활용하면 사업비용도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설사 자가망을 도입하더라도 구축까지 소요되는 2년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셈"이라며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줬던 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구축 전에라도 상용망을 활용한 재난망 통합을 하루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통신 전문가들은 주요 선진국들의 향후 재난망 구축 방향이 자가망보다는 롱텀에볼루션(LTE) 기반의 상용망 중심으로 선회하는 걸 정부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2020년까지 구축 목표인 국가광대역계획 아래 700㎒ 광대역 주파수를 공공안전용으로 할당해 LTE를 재난망 기술 표준으로 채택한 상태다.

테트라 주사용 지역인 유럽과 영국도 향후 공공안전을 책임질 재난망을 LTE로 대체하는 국가사업을 추진 중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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