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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필수설비 분리’ 어떻게] <끝> BT 오픈리치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2.17 18:10

수정 2014.11.07 10:52



【런던(영국)=이구순기자】영국 최대 통신업체 BT는 2006년 필수설비 도매사업을 ‘오픈리치’라는 별도조직으로 분리했다. 필수설비가 없는 경쟁회사들이 BT의 설비를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 조치다. 오픈리치는 동등접속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감시하는 자체 감시기구 ‘동등접속위원회(Equality of Access Board)’를 두고 있다. 동등접속위원회 좀 펌스턴 사무국장을 만나 오픈리치의 성과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오픈리치를 분리한 지 3년이 됐는데 영국 통신시장에 미친 영향은.

▲오픈리치를 분리한 뒤 많은 통신 사업자가 투자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실제 투자가 늘어났다. 과거에는 통신업체들이 통신망에 투자를 해도 된다는 확신이 없어 투자를 꺼렸다.
BT의 필수설비를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픈리치 분리 후 3년 동안 영국 통신업체들은 BT의 설비를 이용해 통신망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됐다. 동등접속위원회는 3개월마다 오픈리치의 동등접속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BT와 규제기관인 오프콤, 일반 통신업체들에 정보를 제공한다. 동등접속위원회는 BT의 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오픈리치 분리가 BT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오픈리치가 가입자망을 다른 통신업체들에 많이 빌려주면서 BT의 통신망 사업 효율성이 높아졌다. 지난 2005년 BT의 가입자망 공동활용(LLU) 회선 수는 25만회선에 불과했지만 2008년 말 현재 550만회선 이상으로 늘었고 회선당 가격은 떨어졌다. 그만큼 망의 경제성이 높아진 것이다. 통신망의 품질도 오픈리치 분리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것은 오픈리치의 대표적인 성공작이라고 볼 수 있다. LLU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망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생긴 효과다.

―차세대 광가입자망(FTTH)도 동등접속 대상인가.

▲FTTH망을 이미 동등접속 대상으로 결정해 놨다. 일반적 개념으로 가입자망이 통신업체들에 가장 골치 아픈 경제적 병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히 FTTH망도 동등접속 대상이 돼야 한다.

―FTTH망을 동등접속 대상으로 정하면 오히려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망 개방 정책이 투자를 줄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통신망은 특정회사가 독점할 때보다 공유할 때 통신업체들이 투자확대에 확신을 가지게 되고 실제 투자가 늘어난다. 일례로 영국의 카폰웨어하우스는 오픈리치 설립 이후 설비투자를 확대했고 지금은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통신사업자로 성장했다.

―BT가 오픈리치 분리 이후 망 투자를 줄이고 통신망 도매 요금을 인상하려 한다는 분석이 있는데.

▲BT 이사회 의장인 이언 리빙스턴이 다보스에서 BT가 15억파운드(약 3조원)를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비로 책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직 구체적인 투자 일정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또 투자가 늦어진다 해도 그것은 BT의 시장분석과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봐야 한다. 오픈리치를 분리했기 때문에 투자를 줄인다는 말은 맞지 않다. 현재 오픈리치는 일부 신도시 지역에서 FTTH 시험서비스를 하고 있다. 올 여름에 2개 도시를 더 늘려 시험서비스를 할 것이다. 15억파운드를 투자하면 FTTH나 FTTC로 영국 전체 가구의 50% 정도를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꾸준히 투자를 해 나갈 것이다. 오픈리치가 규제당국인 오프콤에 통신망 도매요금 인상을 요구해 놓은 것은 맞다. 특정상품이나 특정시장에 대해 현실적 요금책정을 요구한 것이다. 전체 통신망에 대한 요금인상 계획은 아니다. 요금인상 역시 망 개방 때문에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오픈리치 분리 같은 정책이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영국에서 성공한 구조분리 정책이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오픈리치는 영국에서는 분명히 성공한 모델이다. 오픈리치 설립 전에는 영국의 인터넷 회선이나 서비스가 프랑스에 뒤져 있었지만 지금은 훨씬 앞서 있다. 이는 구조분리에 반대하는 나라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체 감시기구 ‘동등접속위’ 맹활약

영국의 국영 통신업체로 출발해 민영화된 BT는 지난 2006년 자발적으로 필수설비 도매사업 조직 '오픈리치'를 분리했다.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이 필수설비 동등접속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BT에 강력한 규제정책을 들이밀자 스스로 조직을 분리해 필수설비 투명화에 나선 것.

현재 BT의 사업조직은 4개다. △도매사업 △전화와 초고속인터넷 등 소비자 대상 소매사업 △글로벌사업 △오픈리치로 나뉘어 있다. 도매사업부는 다른 통신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오픈리치로부터 망을 임대해 다시 도매로 임대사업을 한다.

오픈리치는 BT의 지붕 아래 있지만 완전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매출과 수익배분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법인은 그대로 두고 사업구조만 분리한 형태다. 오픈리치 직원들은 오픈리치의 수익으로 임금을 받고 BT는 오픈리치 수익을 공유하지 않는다.

오픈리치는 구조분리 초기부터 '동등접속위원회(Equality of Access Board)'라는 자체 감시기구를 두고 필수설비 동등접속의 투명성을 감시하고 있다. 동등접속위원회는 3개월마다 필수설비 동등접속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서로 발간해 일반에 공개한다. 오프콤과 BT에도 보고서를 제출한다.

또 영국 통신업체들이 동등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 동등접속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동등접속위원회는 중재에 나선다.


오픈리치는 "동등접속위원회의 투명한 감시 덕분에 BT가 통신업계에서 신뢰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쟁할 수 없는 공룡으로만 인식했던 BT를 통신사업의 파트너로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등접속위원회는 "과거 BT를 믿지 못하던 경쟁업체들이 이제는 BT에 새로운 통신서비스를 적용할 수 있는 통신망 개발을 제안하고 협력개발도 추진한다"며 "통신업체 간 신뢰 확보가 오픈리치 분리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cafe9@fnnews.com

■사진설명=오픈리치 동등접속위원회 좀 펌스턴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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