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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텃세에 멍드는 한국 게임] (상) 게임시장서도 ‘산자이’

백인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8.30 17:06

수정 2009.08.30 17:06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한국 게임업체들이 포기할 수 없는 거대 중국시장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인기 있는 게임을 중국에 선보이면 중국 업체들은 바로 짝퉁 게임을 만들어낸다. 가방이나 구두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 벌어지는 '산자이' 현상이 게임시장에도 벌어지는 것. '산자이'란 산적들의 소굴'이라는 중국어 단어로 문화나 상품을 복제·표절하는 일체의 행위를 뜻한다.

게임을 유통하고 로열티도 받지 못한 채 시장에서 내몰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나 법률분쟁을 벌였다는 소문이 퍼지면 중국 업체들이 한국 게임 유통을 거부하기 때문에 법에 호소하기도 어렵고 우리나라 정부도 손을 놓고 있어 피해를 본 업계만 속을 태우고 있다. 중국의 텃세에 멍들고 있는 한국 게임산업의 현주소와 대책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인기 온라인다중역할수행접속게임(MMORPG) ‘Mu(뮤)’의 개발사인 웹젠은 자사의 차기 개발작을 이름째 중국업체에 뺏길 위기에 처했다. ‘뮤’의 중국 유통사인 더나인이 최근 자체 개발했다며 들고 나온 게임의 이름이 바로 ‘Mu X(뮤 엑스)’다. 더나인은 웹젠의 입장은 아랑곳 않고 “‘뮤 엑스’는 ‘뮤’를 서비스해 오면서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해 뮤의 정통성을 계승한 작품”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최근 ‘Mu 2’ 개발에 나선 웹젠은 더나인에 대한 법적조치를 검토 중이다.

■인기 끌면 바로 ‘산자이’…1·2위 업체도 의혹

2012년 12조30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중국 게임시장은 한국 게임업계에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하지만 이곳에 발을 들여놓기로 한 게임업체라면 저작권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산자이 현상’에 멍드는 것을 미리 예상해야 한다.

실제로 이 같은 의혹을 받고 있는 국산 게임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넥슨 ‘비엔비’를 본뜬 ‘큐큐탕’, JC엔터테인먼트의 농구 게임인 ‘프리스타일’과 흡사한 ‘익스트림바스켓볼’, 예당온라인의 댄스 게임인 ‘오디션’과 유사한 ‘슈퍼댄서’와 ‘댄싱 스타’ 등이 모두 산자이로 의심되는 사례다. 엔씨소프트 ‘아이온’의 일러스트 및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한 웹게임 ‘영원세계’까지 등장했다.

조금이라도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 싶은 게임은 바로 산자이 게임이 나오는 식이다.

심지어 중국 유명 게임업체들조차 이 같은 산자이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달 말 열렸던 중국 게임쇼인 ‘차이나조이’에서 샨다는 넥슨이 퍼블리싱한 던전앤파이터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귀취등 온라인’의 후속작을 자사의 게임개발펀드 ‘18기금’의 주요 성과로 내세워 부스 전면에 소개하기도 했다.

■샨다 ‘전기세계’ 히트 선례…‘비용 절감’ 이유도

국내 게입업체들은 “산자이 현상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유는 중국 게임업계가 산자이를 성공 지름길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르의 전설 2’ 유통사인 샨다는 이를 카피한 ‘전기세계’를 독자적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샨다는 현재 ‘원본’인 ‘미르의 전설2’와 ‘전기세계’로 중국에서만 매년 6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원본을 수입하는 것보다 비슷하게 제작하는 것이 더 싸다는 점도 중국 업체들이 산자이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더구나 소스코드를 도용해 ‘카피’한 수준이 아니라면 한국업체들이 법적대응을 하더라도 표절이냐 벤치마킹이냐의 기준을 가르기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는 점도 중국 업체들의 비양심에 한몫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중국 게임포털 아워게임의 우궈량 대표는 “부끄럽지만 ‘산자이 현상’은 온라인 게임뿐 아니라 중국의 다른 산업분야에도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라며 “좋은 게임 유통업체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산자이에 걸리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라고까지 말했다. 뒤집어 보면 이 같은 사례를 ‘운’으로 돌려야 할 만큼 산자이가 만연해 있다는 설명이다.

■산자이 게임 해외수출…사업기회 뺏겨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나인유의 경우 오디션을 카피한 ‘댄싱 스타’를 십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의 직·간접적인 사업 기회마저 중국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사단법인 콘텐츠경영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중국 온라인 게임산업 변화 진단’ 보고서를 통해 “최근 열린 게임쇼 차이나조이에서 시장 매출 상위 8개 업체가 대부분의 출품작을 직접개발 게임으로 채우고 게임브리오나 언리얼3 등 유수의 게임 엔진을 활용하는 등 온라인 게임의 수준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올라갔다”면서도 “이와 비례해 중국 게임 업체들의 산자이 역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피해 규모는 추산조차 어렵다.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은 “샨다와 더나인이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 점유율 1, 2위 업체임을 감안할 때 기타 미확인된 표절 게임은 상당한 숫자에 이를 것”이라면서도 “숨겨진 사례가 많아 정확한 산자이 피해규모가 집계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fxman@fnnews.com 백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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