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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병을 옮긴다고?”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2.25 16:56

수정 2013.02.25 16:56

“남극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병을 옮긴다고?”

남극의 동물에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과거에는 남극과 같은 추운 지방에서는 바이러스가 살 수 없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남극에 살고 있는 생물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바이러스 공포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송진원 교수는 25일 "국내에서 지난 2007년 극지의학연구회가 출범한 후 남극 등 극지방에 있는 생물을 연구한 결과 남극도둑갈매기에서 신종아데노바이러스가 발견됐다"며 "이 갈매기는 남극에서만 서식하는 게 아니라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을 비롯, 우리나라 독도까지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철새여서 이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남극 연구, 왜 해야 하나

송 교수팀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남극도둑갈매기 사체 9마리를 수집해 연구한 결과 6마리에서 신종아데노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내용은 2011년 1월 SCI논문인 바이올로지(biology)에도 실렸다. 신종아데노바이러스는 폐렴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유행성 각결막염, 장염 등을 유발한다.

특히 영아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경우 치사율이 굉장히 높다.

송 교수는 "남극에서는 규정상 살아 있는 갈매기를 채집할 수 없어 갈매기 사체를 검사했기 때문에 신종아데노바이러스가 더 많이 발견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갈매기 부검을 해봤더니 바이러스가 간, 신장, 폐 등 각종 장기에 전부 침입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던 원인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갈매기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염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만약을 대비해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앞으로 남극에 있는 펭귄에도 아데노바이러스나 독감바이러스가 있는지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동물에만 감염됐다고 여겼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나 조류인플루엔자도 변종을 일으켜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큰 문제가 발생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치료제 없어

문제는 바이러스 치료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변종을 일으키기 때문에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쥐가 병을 옮기는 위험한 바이러스로 알려진 '한타바이러스'도 치사율이 국내 4.4%, 미국 30%가량이지만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다.

한타바이러스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쥐의 종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경우 서울바이러스, 임진바이러스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 바이러스는 쥐의 배설물 등에서 사람에게 옮기며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킨다.

송 교수는 "유행성출혈열에 걸리면 열을 내리는 등 대증요법밖에 실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다"며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마찬가지이므로 미지의 바이러스 연구가 결국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2009년에는 산소와 빛이 들어가지 않는 남극 테일러 빙하 근처 호수 바닥에서 미생물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송 교수는 "산소와 빛이 없는 상태에서 미생물이 살고 있다면 우주에 있는 다른 행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하는지까지 연구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극기지 연구도 활발히 해야

바이러스뿐 아니라 세종기지 등에 살고 있는 우리 대원들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지난 2007년 출범한 극지의학연구회는 남극 등 극지방에 있는 생물을 연구하고 세종기지에 보내는 의료진을 교육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진은 주로 의대 본과를 졸업한 후 군의관 3년 중 1년을 남극에서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이들 의료진에 응급의학을 주로 교육했지만 최근에는 재활의학과, 정신과, 정형외과 등 다양한 과목을 교육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재활의학과 강윤규 교수는 "추운 지방에 오래 살게 되면 통증에 민감해지고 수면 장애를 앓게 되는 등 내륙지방과 다른 증상을 보이게 된다"며 "남극에는 제2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므로 체계적인 의료진 교육뿐 아니라 연구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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