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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13’ 프로젝트] (3부·3) 뿌린 대로 거둔다

임광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9.05 03:27

수정 2014.11.03 15:40

[‘노벨상 13’ 프로젝트] (3부·3) 뿌린 대로 거둔다

#. 유럽의 우수두뇌 유출을 막기 위해 1954년 설립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29억달러를 투입한 27㎞의 거대 강입자충돌가속기(LHC:The Large Hadron Collider)로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세계 2800여명의 연구인력 외에 80여개국 500여개 대학 7000여명이 이용하는 핵물리학, 입자물리학 기초연구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CERN은 그동안 펠릭스 블로흐, 샘 팅, 시몬 판데르메르, 잭 스타인버거 등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0년 11월에는 가속기를 이용해 우주 탄생 순간인 빅뱅을 재현한 '미니 빅뱅' 실험으로 관심을 모았다.

#. 일본정부는 1917년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이화학연구소(리켄·RIKEN)을 설립해 1920년대에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는 중입자가속기를 만들었다. 유럽 최고 연구소와 대학을 방문하며 선진 과학기술을 익힌 일본 현대물리학의 아버지인 니시나 요시오의 제자 유카와 히데키는 1949년, 유카와의 제자 도모나카 신이치로는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또 유카와 등의 영향을 받은 난부 요이치로,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등 일본인 3명은 2008년 소립자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초과학 강국들은 거대과학 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100년이 넘는 연구 전통을 바탕으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따르면 거대과학 시설인 가속기를 이용한 노벨상 수상자는 49명, 핵자기공명(NMR) 등 고자기장으로는 33명이 수상했다.

또 이 같은 거대과학 시설 투자는 해외 인재를 모으는 효과를 가져와 해당 국가의 과학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40년초 노벨상 수상자 20여명 포함, 4500여명의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맨해튼 프로젝트'는 목적이 무기개발이었지만, 대규모로 협업하는 '거대과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4일 과학계에 따르면 최근의 '거대과학'은 환경, 에너지, 질병, 재난 등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연구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수백명 참여하는 '거대과학'이 대세

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NFEC)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입자의 초고속 충돌로 미시세계를 탐구하는 가속기, 전파망원경 등 천문관측, 우주수송체·위성 탐사 시설, 기상·해양·극지 관측시설, 핵융합·원자력 연구시설, 인간유전자 규명, 슈퍼컴퓨터 연구시설 등을 10대 거대과학으로 삼고 투자하고 있다.

NFEC 원동규 장비기획팀장은 "천문 탐사는 거대 망원경, 우주 탐사는 우주 발사체 시설, 미시의 세계 연구는 가속기, 극지연구는 극지기관·쇄빙선 등이 필요하다"면서 "거대시설을 통한 연구와 노벨상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각국의 예산이 한정된 만큼 투자를 잘 조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첨단과학이 대형화, 융복합화되면서 최근 30년간 노벨과학상 공동수상 비율도 78.9%로 늘고 있다. 노벨과학상 공동수상은 1950년대 50%를 넘어서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서는 90.0% 수준에 도달했다.

기초과학 강국들은 거대과학 등의 투자를 위해 예산을 늘리고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미국국가과학재단(NSF), 과학기술정책실,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등의 예산을 10년 내 2배 증액한다는 계획 실현을 재확인했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예산을 3% 수준으로 늘린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2001년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2050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30명 배출을 과학기술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제3기 계획에서는 기초연구를 중점 추진하고 있다. 2007년부터 세계최고수준 연구거점프로젝트(WPI)를 실시해 도쿄대, 교토대, 도호쿠대, 오사카대, 물질·재료연구기구 등 5개 거점을 지정하고 10~15년간 각각 5억~20억엔을 투자하고 있다.

■장기적인 연구풍토 조성도 중요

정부의 장기적인 기초과학 투자와 과학자 연구의 자율성 보장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협회는 1911년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학회'로 설립돼 100여년간 노벨상 수상자를 34명(화학상 14명, 물리학상 11명, 의학·생리학상 9명)이나 배출해 단일기관 세계 최대 기록을 세웠다.

막스플랑크연구협회의 연구소장 및 과학 멤버는 세계적 석학이나 스타급 과학자로 구성되고 엄격한 심사로 채용되며 권한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연구는 계획서 대비 성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었는가를 측정하고, 소장은 5년마다 평가해 연임한다. 협회 예산은 약 2조4000억원이며 90%는 주 정부와 연방정부에서 지원받는다. 매년 1만2000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총 2300여건의 특허를 출원해 2006년 기준 기술료 수입은 2700억원에 이른다.

KISTEP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최근 월드클래스 대학(WCU), 월드클래스 연구소(WCI) 등의 사업 추진으로 개방형 혁신 체제를 강화하지만 규모.실적이 아직은 미진하다.


2009년 국내 주요대학 이공계열 외국인 전임교수 비율은 평균 2.91% 수준이며, 고등교육기관 외국인 유학생은 총 5만여명으로 전체 재적인원의 1.41%에 그치고 있다. 26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정규직 연구원 8800여명 중 외국인은 20명으로 0.2% 수준이다.


KISTEP 차두원 정책기획실장은 "자유로운 기초연구를 할 수 있고 대형장비를 갖춘 막스플랑크연구협회, CERN 등에 세계 인재가 모이고 있다"면서 "거대과학 장비뿐 아니라 협업 환경, 거주조건 등 지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윤정남 팀장 김경수 정명진 임광복 이병철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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