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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창조경제의 두 얼굴] (上) 신생 벤처 ‘싹’ 자르는 정부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18 17:14

수정 2014.10.24 00:24

[IT산업 창조경제의 두 얼굴] (上) 신생 벤처 ‘싹’ 자르는 정부

1.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모바일페이스는 '어디갈까'라는 여행정보 제공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했지만 최근 다운로드 수가 급감해 고민에 빠졌다. 앱을 내놓은 지 1년 뒤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라는 비슷한 앱이 나왔기 때문. 최근엔 두 앱의 이벤트 및 업데이트 시기도 겹치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매출 감소는 없지만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앱과 정면 경쟁하기 어려워 사업을 접자는 의견이 회사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2. GE헬스케어코리아는 최근 의료기관용 표준 소프트웨어(SW) 시장 진출을 포기했다. 지난 2년간 수억원을 투입해 관련 SW를 개발했지만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기관용 표준 SW를 개발해 배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장 진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게다가 컴퓨터단층촬영(CT)환자 방사선 피폭량 기록·관리SW 개발도 준비했으나 이마저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해당 SW의 무상 배포를 결정,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창조경제의 '꽃'으로 불리는 SW·앱 산업에서 기업들의 최대 경쟁자는 '정부'라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민간업체에서 연구개발해 출시하거나 준비 중인 제품을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유사하게 만들어 내놓으면서 기업이 정부와 시장에서 힘겨운 경쟁을 벌이는 사례가 빈번한 것.

필요한 정보를 공공기관이 제공해 공익적 측면에서 유용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무분별한 공공기관 SW산업 진출이 창업→기업의 성장→시장경쟁으로 이어지는 창조경제 생태계를 해치는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공공성 범위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978개 공공기관에서 총 1167개의 앱을 배포했다. 기관당 1개 이상의 앱을 개발해 서비스 중인 셈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정부가 민간과 유사한 앱 서비스를 제공해 43.6%의 민간기업들이 매출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기업이 기존에 제공하던 것과 유사한 SW 및 서비스를 공공기관에서 개발해 무상으로 배포하는 사례가 늘자 실제 일부 SW업체는 도산위기에 빠지는 등 관련분야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이 기업들보다 먼저 SW·앱을 개발한 경우보다는 뒤늦게 출시한 사례가 빈번하면서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기업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SW 및 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부는 이윤 창출이 목적이 아니어서 광고나 유료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민간사업의 경우 광고를 도입하거나 유료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용자들의 이탈이 불가피한 탓이다.

또 정부가 앱이나 SW를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아예 관련시장 자체가 생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사례가 증가할 경우 관련제품 판로 차단과 기업들의 기술개발 의지 저하, SW 및 앱의 무료 인식 확산 등이 겹쳐 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 데이터를 제공하고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지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간은 개방된 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춘성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는 필요한 공공서비스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 경쟁을 통해 서비스할 민간기업을 선정해야 한다"며 "정보기술(IT)산업 특성상 동등한 수준의 제품을 자체 개발하려고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황주성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민간에서 잘하고 있는 사업에 정부가 경쟁자로 진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에선 정부가 원천적으로 정보를 차단하면서 기업의 시장진입을 막는 사례도 있다"며 "정부가 주체가 되기보다는 민간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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