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이우종의 올댓와인] (3) 나의 깃대종(種) 와인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20 03:42

수정 2013.08.20 03:42

[이우종의 올댓와인] (3) 나의 깃대종(種) 와인

최근 내 주변에는 와인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데 대개 와인은 종류도 많고 이름도 복잡한 데다 맛도 잘 모르겠어 어떤 와인을 마셔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실 와인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름이 쉬운 와인을 찾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몬테스 알파(Montes Alpha)'나 히딩크 와인으로 알려진 '샤또 탈보(Chateau Talbot)' 정도가 아닐까 싶다.

환경생태학에서 쓰는 용어에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 동식물을 뜻한다. '깃대'라는 단어는 개척자적 이미지를 부여한 상징적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을 차용해 맛과 향, 가격 등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와인을 깃대종으로 선정하고 그 와인과 대비해 다른 와인들의 다양성을 판별하고 있다.

[이우종의 올댓와인] (3) 나의 깃대종(種) 와인

도시계획을 전공한 나는 이탈리아의 도시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싶어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많은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파르마, 시에나, 페라라 등지를 다니면서 식사 때마다 가능한 한 그 지역 와인을 곁들여 마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그 기간 베니스에서 3박4일 체류하면서 중세의 멋에 취해 운하를 바라보며 와인을 한 병 주문했는데 그 맛과 향이 당시의 로맨틱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연출했다. 그때 마신 와인이 '루피노 리제르바 두칼레(Ruffino, Riserva Ducale)'였다. 그 맑고 영롱한 빛깔에 깊은 동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심오한 향과 단맛이 전혀 없는 정갈함 그리고 벨벳처럼 부드럽게 감겨오는 목넘김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가격도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니면서는 식사 때마다 이 와인을 찾았다. 그 후로도 국내외 할 것 없이 기회만 있으면 이 와인을 찾아 마셨다. 그리고 이 와인은 나의 깃대종 와인이 됐다.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 나는 본격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지식을 하나씩 늘려가며 자연스럽게 와인을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토스카나 지방의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이 지역 고유의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으로 '주피터의 피(Blood of Jupiter)'를 의미한다. '리제르바 두칼레'는 '공작(公爵)을 위해 보관한'이라는 뜻으로 북서부 아오스타 지역의 공작이 로마로 성지순례를 가면서 이 지역에 들러 마신 후 감탄해 돌아갈 때 모두 매입을 할 테니 예약해달라고 주문한 데서 비롯된 표시였다.

한번은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여주인공 앤 해서웨이가 식당 요리사로 일하는 남자친구와 마시는 와인을 보게 됐다. 그 와인이 바로 '루피노'였다.

영화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을 사람들은 알까? 그 후로 이 와인은 뉴욕 맨해튼의 대중식당에서 품절되는 소동을 빚는 등 '뉴요커의 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나에게 어떤 와인을 어떻게 골라 마시는 것이 좋을까 물어오는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가장 맛있게 마셨던 자신만의 깃대종 와인을 정한 후 그 와인을 집중적으로 음미하다가 차차 새로운 맛과 향을 찾아 그 영역을 넓혀 나갈 것을 권유한다.

가천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

doo@fnnews.com 이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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