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개인회생 졸업자 1만명..“파산딛고 새 삶을 꿈 꾼다”

손호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1.02 17:12

수정 2011.01.02 17:12

#.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권모씨(49)는 지난 2006년 3억원에 가까운 빚을 견디다 못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형이 사업부도로 자금이 부족해 사채를 쓰게 되자 그 보증을 섰다. 형을 대신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이자를 갚다보니 점점 더 부채가 늘어났고 급여까지 압류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권씨는 한 달에 135만원씩, 2011년 8월까지 갚는 조건으로 개인회생 개시결정을 받았다. 이후 생활의 불안정으로 10여차례 변제액을 갚지 못하게 되고 주거불안정으로 연락조차 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지난해 10월 회생폐지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생위원이 어느 순간부터 꾸준하게 변제액을 갚아나가고 있는 점을 발견, 그를 수소문했고 그는 미납된 변제금액을 모두 갚게 됐다.
이후 미납된 금액 없이 변제를 잘 수행하면서 면책 이후의 삶을 꿈꾸고 있다.

권씨는 “2008년 다시 취직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며 “면책을 받은 후 다시 새 삶을 살 것을 생각하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아픔을 겪으면서 시집을 세권 냈는데 세번째 시집 서문에 ‘무덤속 관에 갇혀 옴짤달싹할 수 없는 힘겨운 삶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쏘시개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고 전했다.

과도한 채무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채무자들을 위해 개인회생 제도가 도입된 지 6년이 지나면서 면책처분을 받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다가올 새 삶에 대한 기대로 또 다른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면책 받은 채무자들의 실질적인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신용평가 제도를 개선, 은행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개인회생제도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불러오는 가정파탄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화목한 가정에 불어닥칠 수 있는 재무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안전판’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회생 졸업자 1만명 돌파

2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개인회생을 통해 면책을 받게 된 채무자는 지난해 10월 말 현재 1만305명에 달한다. 연도별 누계를 보면 2005년 1명에 불과했던 개인회생 졸업자는 2006년 23명, 2007년 16명, 2008년 326명으로 늘어났고 2009년 말까지 1465명이었다. 2009년 한해동안 1063명의 면책자가 늘어난 것이다.

2009년 개인회생 졸업자가 1000명을 넘어선 이후 지난해(10월 기준)에만 1만1711명이 발생, 채무부담에서 벗어나는 채무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개인회생제도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파탄에 직면하고 있는 개인채무자가 향후 수입이 계속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채무자의 효율적 회생 및 채권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로, 2004년 9월부터 시행됐다. 총 채무액이 무담보채무의 경우 5억원, 담보부채무의 경우 10억원 이하인 개인채무자가 3∼5년간 일정한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의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다.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변제를 모두 마치게 되면 면책되고 면책된 채무자는 전국은행연합회 공동전산망에서 공공정보(파산·개인회생 등의 기록)가 삭제돼 저신용채무자의 꼬리표를 벗게 된다.

지대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수석부장판사는 “개인회생을 통해 면책되는 채무자가 1만명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됐다”며 “성실하게 변제해 면책을 받게 된 채무자들이 신용을 회복하는 데도 성실하게 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제도 개선해야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았던 이모씨는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해 일부 채무를 탕감받았고 나머지 채무를 3년간 성실히 변제, 지난해 8월 은행연합회 전산망에 등재돼 있던 공공정보가 삭제됐다. 그러나 공공정보 삭제 후 개인신용평가사가 이씨의 신용등급을 6등급에서 8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3년 동안 금융거래 실적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이씨는 “불량정보로 분류되는 공공정보가 삭제됐는데도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빚을 갚기 위해 노력했는데 다시 신용을 어떻게 쌓아나갈지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국내 신용평가사는 한국신용평가정보, 한국신용정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 3곳이다. 이 기관들의 신용평가는 개인들이 은행 등 금융회사와 거래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등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들 신용평가사들은 개인 신용평가 시 금융거래 실적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하는데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운 개인회생 신청자들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가사 측은 “공공정보가 삭제되면서 신용평가에 활용할 자료도 함께 없어진 것”이라며 “금융거래 실적이 전혀 없어 과거 은행권 등에서 신용조회한 기록만으로 신용등급을 산출하게 돼 낮은 신용등급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렇게 공공정보가 삭제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저신용층은 금융회사와의 거래 자체가 어렵게 돼 대출이나 카드발급 등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신용평가 아래에서 금융소외자들은 ‘금융거래 불가능-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세금이나 건강보험, 국민연금 납부 기록 등 우량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용등급을 산출할 때 연체 등 부정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량한 정보도 많이 반영해야 한다”며 “금융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용평가 결과를 열람하고 틀린 부분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art_dawn@fnnews.com손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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