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15) ‘26년만의 상봉’ 이름과 낡은 사진만으로 찾아준 ‘경찰청 182’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3 17:25

수정 2014.10.28 04:30

경찰청 182실종아동찾기센터 이건수 팀장(경위·뒤쪽)과 박미순 행정관, 이주영 경사, 홍보영 경위, 최은주 행정관(앞줄 왼쪽부터)이 서울 남영동의 센터 사무실에서 손가락으로 1.8.2를 표시하며 실종 가족 '0'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경찰청 182실종아동찾기센터 이건수 팀장(경위·뒤쪽)과 박미순 행정관, 이주영 경사, 홍보영 경위, 최은주 행정관(앞줄 왼쪽부터)이 서울 남영동의 센터 사무실에서 손가락으로 1.8.2를 표시하며 실종 가족 '0'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김○○ 아시죠? 아드님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 찾고 있어요." - 경찰청 182센터 관계자

"갑자기 이렇게 연락오니 당황스럽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네요."- 실종자 어머니

"아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주 착하고, 이쁘고, 바르게 잘 컸습니다."- 182센터 관계자

경찰청 182 실종아동찾기센터는 실종자 위치추적 승인, 사전등록 시스템 관리 등을 총괄하며 실종업무에 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에서 발생하는 18세 미만의 아동과 지적장애인, 치매환자의 실종신고를 182 전화, 문자(#182), 인터넷(안전드림 포털)을 통해 접수하고 수색에 나선다.

가출 등으로 오래전에 헤어진 가족이나 국내외 입양인들에게 가족을 찾아주는 '잃어버린 가족찾기'도 182센터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182센터 소속 경찰들은 실종사연 접수에서부터 상봉으로 이어지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을 하고 있지만 '상봉'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동안의 수고를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9일 오후 6시30분. 파이낸셜뉴스와 공동으로 '잃어버린 가족찾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경찰청 182 실종아동찾기센터의 이건수 경위(46)가 서울 목동 중앙로의 한 다세대주택 2층 현관 앞에서 실종자 어머니 엄모씨(48·여)를 설득하고 있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 충남 아산에서 4시간 넘게 달려온 아들 김모씨(27)는 이 집 인근에서 '혹시나 엄마가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할까' 가슴 졸이며 인근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다.

26년 전 첫돌이 채 안 된 젖먹이를 두고 집을 나온 엄마는 갑작스러운 아들과의 상봉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추석에 시댁을 찾았다가 '목욕탕에 간다'며 도망치다시피 집을 나왔다고 했다. 아들에 대한 죄스러움은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재혼해서 낳은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아직 동복형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

10여분에 걸친 이 경위의 설득 끝에 엄씨가 집에서 나왔고 주차장에서 아들과 마주한 엄씨는 자신보다 키가 한 뼘 이상 훌쩍 커버린 아들을 말 없이 꼭 안았다.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잘 지내셨어요?"라며 안부를 물었고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동명인 찾기에 현장조사… 추적의 연속

이날 모자 간의 극적인 만남은 지난 1월 말 아들 김씨가 경찰청 182센터에 가족찾기 사연을 접수한 후 80여일 만에 이뤄졌다. 182센터 관계자들의 땀과 노력이 26년 만의 상봉을 이루게 한 것이다.

182센터 홍보영 경위(46·여)는 "다른 사연도 가슴이 아프지만 김씨의 경우는 첫돌이 되기 전에 헤어져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태어날 때 난산으로 인해 오른손과 발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 어머니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182센터가 김씨의 어머니를 찾는 일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머니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씨 부모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김씨가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낡은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182센터는 프로파일링시스템 검색 등을 통해 김씨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동명인 130여명의 명단을 확보했으나 특정할 수는 없었다. 이건수 경위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씨의 어머니가 개명하는 바람에 찾기가 훨씬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다음은 끈기와의 싸움이었다. 먼저 과거의 병원기록과 인척관계 등을 조사해 추정되는 인물을 압축해 나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명인 모두에게 '아들이 엄마를 찾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런 경우 엄마가 재혼했을 가능성이 높아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해 친인척을 찾는 척하면서 편지를 보내는데 당사자들은 본인의 얘기라는 걸 금세 눈치챈단다.

이 경위는 "지난 10여년 동안 '잃어버린 가족찾기'를 하면서 보낸 편지를 모두 합치면 족히 7만통은 넘을 것"이라며 "많을 때는 일주일에 1000여통을 보내기도 했는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동시에 182센터는 유력한 대상자를 추려 현장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씨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이 경위는 "지난 2012년 10월 서울 구의동에서 가족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도둑으로 몰려 112신고를 받아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면서 "이번에도 수차례 방문조사를 벌였지만 그런 일이 없어 다행"이라며 웃었다.

■해외입양 가족 찾기 위한 유전자 검사도

다음 날인 10일 오전 기자가 이 경위를 다시 만난 곳은 서울 중랑구 중랑역(중앙선) 인근의 다세대·다가구 밀집지역이었다. 39년 전인 지난 1975년 가족과 헤어져 벨기에로 입양된 김영선씨(45·여)의 작은오빠로 추정되는 이모씨(46)의 유전자를 채취하러 왔단다. 당초 여동생의 실종신고를 낸 큰오빠(추정)의 유전자를 채취할 예정이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수소문 끝에 작은오빠를 찾아냈다.

이 경위는 "벨기에에 사는 김씨가 안전드림포털 182센터를 검색하다 같은 해 부산 연산시장에서 실종된 이경미양(당시 4세)이 본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유전자검사를 요청해왔다"며 "김씨는 지난 2012년 6월 처음 사연을 접수한 뒤 닮은 사람을 찾아 이미 두 번이나 유전자검사를 했지만 일치하지 않아 이번에도 걱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부재 중이었다. 집주인에게 신분을 밝히고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에야 이씨의 휴대폰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씨는 서울 문정동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씨의 일터와 가까운 송파구 잠실 롯데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뒤 만난 이씨는 김영선씨의 어릴 적 사진을 보자마자 "기억 속에 있는 동생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이어 김씨가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씨는 "자신이 기억하는 동생의 실종 당시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며 흔쾌히 유전자 채취에 응했다.

이 경위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면 일주일 후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마음이 급한 김씨는 벌써 닷새 전에 한국에 들어와 유전자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 무릅쓰고 언제·어디든 찾아 나서

지난해 6월 홍보영 경위에게 서울 목동에 사는 60대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진 20대 후반의 아들이 보름 전에 집을 나갔고 지하철역에서 노숙자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경찰은 도대체 뭘 하는 거냐"면서 아들을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며칠에 걸쳐 밤낮으로 민원전화를 걸어와 182센터 직원들이 모두 괴로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결국 홍 경위는 그에게 서울 남영동 182센터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경찰관과 함께 노숙자들이 많은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을 다니며 직접 아들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이건수 경위는 이 남성과 사흘 동안 서울역을 비롯해 청량리역, 영등포역, 노량진역, 당산역 등을 다니며 아들을 수소문했다.

이 경위는 "그가 원하는 지하철역을 모두 뒤지고 폐쇄회로TV(CCTV) 등 보고 싶어한 것도 모두 보여준 후에야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며 "나흘째 되던 날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아들을 발견해 가정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아찔한 경험도 있다. 이 경위는 지난해 4월 실종된 20대 아들을 찾기 위해 그의 엄마와 같이 서울 영등포 일대를 돌아다녔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주로 일하는 현장에 갔다가 한 관계자가 "왜 여기서 아들을 찾느냐. 불쾌하다"며 철제 쓰레기통 뚜껑을 집어던졌다.

큰 부상은 피했으나 이 경위의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에 멍이 들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지난해 11월 어느 날에는 다섯 살 때 길을 잃어버린 50대 남성의 가족 확인을 위해 오전 3시께 강원도 태백에 겨우 도착했지만 길을 잃고 한참이나 헤맸던 기억도 있다.

이 경위는 "가족을 찾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지만 상봉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의 수고를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며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잃어버린 가족 상봉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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