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객선 침몰참사] 하루 86회 운행 · 숨 차도 입수.. “아이들 생각하며 도와요”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3 17:37

수정 2014.10.28 04:29

【 진도(전남)=안승현 박세인 기자】세월호 승객들의 목숨을 앗아간 차가운 바다. 실종자 가족들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슬픔을 억누른다. 그들이 가슴을 저미며 눈물을 흘릴 때 묵묵히 뒤에서 돕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전남 진도로 내려간 자원 봉사자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캄캄한 바다로 들어가는 잠수사들부터, 진도 팽목항과 경기 안산 장례식장을 수차례 왕복하는 택시기사까지. 이 비극을 보듬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숭고하다.

■안산∼진도 유가족 운송

"바로 옆집 사람도 희생됐고 동료의 자식도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객선 침몰 사고 직후 안산 지역 택시기사들은 유가족의 발이 되기로 결정했다. 안산 지역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원들은 '유가족 운송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운구차량이 안산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면 유가족을 태운 택시가 뒤를 따른다.

23일 현재 유가족 운송차량을 운행하는 택시기사는 200명 정도로 개인택시뿐 아니라 회사에 소속된 택시기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팽목항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는 10여대, 연이어 실종자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진도로 향하는 택시기사가 늘어났다.

택시기사 안대순씨(57)는 "처음에는 팽목항에 잠깐 대기하다가 안산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어제부터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유가족과 함께 올라가기도 한다"며 "안산∼진도를 왕복하면 하루 열시간 정도 걸리지만 유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빵맹그는 아짐' 김연단 회장(54)은 첫날 학생들의 수학여행길에 여객선 침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을 챙겨 진도체육관으로 향했다. 처음 김 회장은 "배에 타고 있던 학생들이 체육관으로 돌아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음식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숨이 차올라도 구조가 우선"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인 지난 17일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초기 잠수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김대성씨(35)는 이날 파이낸셜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너무 죄송하게도 생업 때문에 더 오래 있지 못하고 올라왔다. 안 갔으면 모르되 그곳 상황을 보고나니 돌아오는 발길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대성씨는 특수전사령부 산하 707특수임무대대에서 10년간 복무한 후 지금은 인천공항폭발물 처리반에서 근무하고 있다. 민간 다이버협회인 IDIC에서 다이빙 강사도 겸하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진도로 내려왔다.

김씨는 해경이 운전하는 보트를 타고 다른 민간잠수사 3명과 사고 현장에서 물속으로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고 초기 선체 수색 작업을 벌였다.

지금은 물 위에 바지선이 떠 있고 물속으로 가이드라인이 이어져 있지만 김씨가 현장에 왔을 때는 망망대해뿐이었다.

김씨는 "팽목항에서 사고현장까지 빠른 보트로 1시30분, 왕복 세시간이 걸리는 거리"라며 "시야가 20㎝도 안되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수색 초기에 성과가 부진하자 여론이 잠수사들을 너무 몰아세워 안타깝다고 했다.

ah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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