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27) 환경미화원 체험기.. 클럽서 뿌려댄 명함에 ‘울화통’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06 17:37

수정 2014.10.24 16:25

본지 윤경현 기자가 2일 새벽 영등포역 앞 유흥가 밀집지역 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본지 윤경현 기자가 2일 새벽 영등포역 앞 유흥가 밀집지역 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열대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지난 2일 새벽 3시께 영등포구 청소과 환경미화원 이황용씨를 따라 영등포역 인근 거리 청소에 나섰다. 처음 들어보는 대형 플라스틱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토시를 꼭 착용하라'는 충고가 들렸다. 빗자루에 팔뚝이 쓸려 상처를 입기 쉽다는 이유였다.

12년차 고참인 이씨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일하기가 쉬운 인도 청소를 맡겼다. 하지만 인도 역시 '상대적'인 것일 뿐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보도블록 사이에 낀 담배꽁초는 두 번, 세 번의 빗질에도 쉽사리 제 몸을 나에게 맡기지 않았다.

더욱 내 화를 돋운 것은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뿌린 명함이었다. 힘차게 비질을 하고 '됐다' 싶어 돌아보면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쓰레받기 아래로 숨어버리는 탓이었다. 하다하다 안 돼서 결국에는 손으로 명함을 주워 담았다.

고참은 씩씩거리는 나를 보면서 "오늘은 그래도 쉬운 건데…"라고 약을 올렸다. 알고 보니 고참에게도 가장 귀찮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명함이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닥에 '착' 달라붙어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시 후 만난 물티슈는 명함을 능가하는 상대였다. 고참은 "환경미화원들에게 항상 물기를 머금고 있는 물티슈는 '공공의 적 1호'나 마찬가지"라며 "일일이 손으로 떼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조언해줬다.

시계는 오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비질은 제법 요령이 붙어 담배꽁초를 골라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서툰 비질에 팔뚝은 시큰거렸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번에는 버스정류장 한쪽에 막걸리 병을 비롯해 쓰레기가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분리수거에 들어갔다. 그중 음료수 병 하나는 3분의 2 가까이 채워진 상태였다. 노란색의 내용물이 음료와 비슷했는데 막상 냄새를 맡아보니 사람의 오줌이었다. "노숙자들이 거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화장실 가기가 귀찮아 음료수 병에다 실례를 한 것"이라는 고참의 설명이었다.

황당한 일은 금세 또 벌어졌다. 지나가는 외제차에서 누군가 담배꽁초를 '휙' 내던지고는 쏜살같이 도망을 갔다. 차 뒤꽁무니에 저주를 퍼붓고 있을 때 고참이 "원래 좋은 차 타는 사람이 담배꽁초를 더 버린다. 좋은 차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니까"라고 농을 건네 한참을 웃었다.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니 포장마차와 공중전화 부스 사이의 작은 틈, 셔터가 내려와 생긴 문과의 틈새 등 쓰레기는 상상 그 이상의 장소에도 숨어 있었다. 속으로 '어쩌면 이리도 치우기 힘든 곳에다 버렸을까' '버리기가 더 힘들었겠다'며 사람들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7시가 가까워서야 일이 마무리됐다. 크게 한 일은 없었음에도 구석구석 온 몸이 쑤셔왔다.

고참은 "기왕 하는 거 하루 종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이번 4시간의 일에 곱하기 3을 하면 하루가 된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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