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28) 밀린 임금에 막막한 내일, 저희가 ‘氣’ 펴드립니다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0 16:58

수정 2014.10.23 22:33

추석을 앞두고 근로감독관들은 체불임금 해소를 위해 여름휴가와 휴일도 반납한 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 소속의 권혁기·임재범·홍명기·송민종 근로감독관, 이경환 공인노무사, 문명수·박상희·강한구·신관철·강호석·김달환·이호익·윤영숙 근로감독관(왼쪽부터)이 근로자의 권리 보호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추석을 앞두고 근로감독관들은 체불임금 해소를 위해 여름휴가와 휴일도 반납한 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 소속의 권혁기·임재범·홍명기·송민종 근로감독관, 이경환 공인노무사, 문명수·박상희·강한구·신관철·강호석·김달환·이호익·윤영숙 근로감독관(왼쪽부터)이 근로자의 권리 보호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설이나 추석이 가까워지면 언론 등에서 임금체불이 주요 뉴스로 등장할 정도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내 한 아파트 건설현장 근로자 30여명이 회사 측에 밀린 임금을 달라며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경기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우리나라의 임금체불 규모는 연간 약 1조2000억원이며 피해 근로자는 27만명에 달한다. 1인당 연 450만원의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셈이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6월까지 6500억원가량의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제때 임금을 받지 못한 임금체불 근로자들은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이들에게 '풍성한 한가위'는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텅 빈 주머니가 고향 가는 발걸음마저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체불임금 해결을 핵심 업무로 삼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체불임금 해소를 위해 주말도 없이 하루를 48시간처럼 뛰고 있는 근로감독관의 활약상을 들여다봤다.

■'밀린 임금 해결' 가장 큰 보람

지난 9일 기자가 만난 대치동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의 이호익 근로감독관(44)은 면담이 잡혀 있는 진정인들에 대한 서류를 검토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어깨너머로 흘깃 보니 모두 임금체불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전 10시에 약속한 30대 여성이 10여분 일찍 도착했다. 진정인은 유통업체에서 일했는데 2개월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30분 이상 상담이 이어졌다. 상담이 끝나자 이 감독관은 피진정인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일자를 조율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근로자들을 보면 모두 안타깝지만 상대적으로 더 약자인 여성 근로자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이 감독관에게는 지난 2006년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 근무 당시 면담한 외국인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아직도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는 "베트남 출신의 20대 여성 미싱공이 밀린 월급 200만원 정도를 받지 못한 것으로, 사업주가 도망을 다니는 바람에 밀린 돈을 받을 수도,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면서 "상담을 하면서 그의 눈을 봤는데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겐 큰돈이 아닐지 몰라도 그에게는 '정말 필요하구나' 하는 절실함이 묻어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오전 11시에 찾아온 40대 남성은 작은 건설업체에서 근무하던 2012년에 월급을 다 받지 못했고, 오후 2시에 상담하러 온 30대 남성도 부동산 컨설팅업체에 다니다 두 달치 월급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였다. 오후 4시에 찾아온 30대 간호사 역시 모 성형외과에서 3년 가까이 일했으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사업주와 근무기간에 대한 이견이 있다고 이 감독관에게 하소연했다.

이 감독관은 "이들 근로자 모두가 받지 못한 임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하루하루 받는 임금이 사실상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라며 "고액의 임금체불보다는 힘든 사람들에게 체불임금을 받게 할 때가 더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신고사건의 90% 이상이 임금체불이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근로감독관들이 체불임금 청산에만 주력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산기업의 밀린 임금을 국가가 대신 지급해주는 체당금 업무다.

이 감독관은 "지난해 9건 정도 맡았는데 업체별로 적게는 5∼7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며 "주고 싶다고 함부로 퍼줄 수 있는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의 통장 거래내용 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 및 연소 근로자의 야간근로나 휴일근로에 대한 인허가, 퇴직연금 규약에 대한 심사도 근로감독관의 일이다.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 윤영숙·이호익 근로감독관(왼쪽부터)이 서울 논현동의 한 사업장을 찾아 직원들의 근무여건 등근로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 윤영숙·이호익 근로감독관(왼쪽부터)이 서울 논현동의 한 사업장을 찾아 직원들의 근무여건 등근로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사회적 비용 줄이는 '조정자' 역할

이 감독관은 "회사는 밀린 임금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종업원들이 이를 믿지 못할 때 마음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최근 수사를 끝낸 한 어학원의 경우가 그렇다. 이 감독관에게는 회사가 어떻게든 밀린 임금을 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약속했던 돈의 일부가 지급이 되지 않으니 회사를 그대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 같이 살 수 있다"며 직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보지만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라 손 쓸 도리가 없다.

"법적절차까지 가기 전에 협의를 통해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체불임금을 해소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죠. 어차피 임금체불로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징역 3년 이하, 벌금 2000만원 이하의 형인데 벌금 낼 거면 차라리 그 돈으로 직원들 밀린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근로자들이 회사를 믿을 수 있게끔 감독관들이 조정 역할을 합니다." 이 감독관은 사회적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임금 사건으로 소송을 벌이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겠느냐"며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갈등조정자 역할을 하는데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설명했다.

근로감독관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악성 민원'이다. 민원인들이 욕을 하고 반말에 삿대질을 하는 것은 그래도 '양반' 수준이다. 경기 의정부지청에서 일할 때는 한 사업주가 사무실을 찾아와 윗옷을 모두 벗은 채 집기를 마구 집어 던진 적도 있다.

이 감독관은 "사용자의 주장을 확인하는 질문을 사용자를 편드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위법한 부분이 아닌 데도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며 "일부는 '사업자와 한통속'이라는 등 어깃장을 놓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사업주에게 피해가 가도록 할 수도 없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 감독관의 책상 위에 놓인 일정표에 '20일 춘천교도소'라고 적힌 것이 이채로웠다. 그는 "피의자(체임사업주) 접견신청을 통해 사업주의 위반사항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라며 "한 번 가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한꺼번에 몰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불리한 근로조건' 감독 임무도 맡아

기자는 그리고 12일 오전 10시께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이 감독관을 다시 만났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대한 사업장 감독을 나온 그와 20여년 경력의 윤영숙 근로감독관(49)이 동행했다.

이 감독관은 "통상 2인 1조 또는 3인 1조로 팀을 이뤄 점검을 벌이는데 직원수가 4∼5명인 소규모 단순사업장의 경우 2∼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며칠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실제로 모생명보험사의 경우 들여다볼 내용이 많아 3명이 함께 점검을 나갔는 데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려 5일이나 소요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감독관이 점검을 벌인 사업장은 모두 411개에 달한다.

이날 해당 사업장에는 종업원 혼자 일하고 있었다. '투잡족'인 사업주는 한참 후에나 도착할 거라는 연락이 왔다. 윤 감독관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주로 불시점검을 하는데 늘 이렇게 변수가 있다"며 "운이 좋아 사업주를 바로 만나기도 하지만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고 낮에 만나지 못해 저녁에 다시 방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사업주는 1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직원 2명과 아르바이트 1명을 쓰는데 근로감독을 받는 것은 처음이란다.

사업주는 지난 5월 매장을 인수해 장사를 하고 있는데 "매상이 신통치가 않아 아내가 나와 거들고 있는 데도 임대료 내기조차 빠듯하다"며 하소연부터 했다. 근로감독관들이 제일 난감한 순간이다. 이 감독관과 윤 감독관은 임금대장, 근로계약서 등을 꼼꼼히 살피면서 사업주를 상대로 주휴수당과 시간외근로수당은 제대로 주는지, 최저임금 위반은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윤 감독관은 직원을 따로 불러 이를 재차 확인했다.
낮 12시가 다 돼서야 사업장감독이 끝났다. 해당 사업주는 "어렵다고 해도 직원들 월급을 적게 주거나 떼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웃었다.


이 감독관과 윤 감독관은 "사무실로 돌아가 간단하게 점심식사한 후 오후에 다시 민원인들을 만나야 한다"며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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