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쓰레기통 없는 거리..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죠?”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1 17:28

수정 2014.10.23 21:30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쓰레기통 없는 거리..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죠?”

#. 서울 잠실동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이모씨는 지난 20일 수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다니는 신촌의 대학 인근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음료를 구입했다. 다 마신 후 컵을 버리려 했지만 쓰레기통이 눈에 띄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엔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쓰레기통을 찾을 수 없었다. 길거리에 그냥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이씨는 이 종이컵을 휴대한 채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인 잠실운동장역 부근의 한 주택가에 가서야 겨우 쓰레기통을 발견하고 버렸다. 휴대용 가방에다 이날은 비 때문에 우산까지 들었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서울시내 길거리나 광장, 공원 등 공공장소에는 언젠가부터 쓰레기통이 거의 사라졌다.
지난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전면실시 후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시민들의 종량제 봉투 사용을 유도하고 재정난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공공장소의 쓰레기통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95년 당시 7607개에 달하던 길거리 쓰레기통이 지난해 4724개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서초구는 도시 미관 개선과 쓰레기 무단투기를 방지한다며 2012년 6월에 길거리 쓰레기통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런데 길거리에 쓰레기통을 없애거나 줄인다고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고 도시미관이 개선될까?

파이낸셜뉴스는 이번 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리즈 주제를 '쓰레기통 없는 거리…쓰레기는 어디에'로 정하고 심층취재했다.

21일 기자가 찾은 서울 강남과 종로 등 시내 주요 도로변에서는 쓰레기통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행 중 발생하는 담배꽁초나 휴지, 음료수병, 종이컵 등을 가로수 밑이나 화단 등에 무단으로 버리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버스정류장 주변의 건물 내 쓰레기 배출장소는 아예 금세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쓰레기통은 내부는 물론 공간이 모자라 주변까지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강남역 인근 벤치 위에는 마시다 남은 음료가 널려 있고 생활정보지 가판대는 쓰레기통인 양 정보지 대신 각종 쓰레기들이 뒤섞여 가득차 있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길을 가던 한 엄마는 과자봉지를 버릴 곳을 찾지 못하다 건물 주변 종량제 쓰레기 봉투더미 위에 슬쩍 올려놓는 모습도 보였다.

■화단·정보지 가판대가 '쓰레기통'

서울 서초구의 한 도로변에서 소형 슈퍼마켓을 하는 김모씨는 "공공장소에서 쓰레기통을 찾기 어렵다 보니 시민들이 가게 종량제 쓰레기 배출 장소를 투기장으로 만들어 전단지나 일회용 컵 등을 버려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김모씨는 "쓰레기통이 없어 시민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기 때문에 되레 도시미관을 해친다"며 "쓰레기통을 늘리는 게 미관 개선에 더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모씨(77)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캔이나 병을 아무 곳에나 버려서 전보다 쓰레기가 훨씬 늘어났다"며 "쓰레기통이 줄어들면서 거리가 더 지저분해졌다"고 밝혔다.

환경미화원들도 사라진 쓰레기통으로 인해 일 부담이 훨씬 커졌다. 환경미화원 임모씨는 "시민들이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다 보니 시내가 지저분해지는 것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업무부담도 훨씬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많을수록 더 지저분" 주장도

쓰레기통이 많을수록 오히려 거리가 지저분해질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일부에서는 종량제 봉투값을 아끼려고 인근 주거단지 주민들이 도로변 쓰레기통에 가정 내 생활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한다. 10년간 용산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50대 환경미화원은 "인근 일부 주민들이 생활쓰레기를 투기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영하던 쓰레기통을 구에서 철거했다"고 전했다.

수거가 어려운 일반 쓰레기통 대신 분리수거 쓰레기통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회사원 김형주씨(30)는 "미관이 좋고 분리수거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분리수거 쓰레기통을 많이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민원이 지속되자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 공공장소의 쓰레기통 설치를 늘리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정작 설치 권한이 있는 자치구는 서울시의 재정 지원이 없으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재정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쓰레기통을 늘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쓰레기통을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종종 들어와 자치구에 설치를 권고하고 있지만 설치 여부는 자치구의 고유업무이므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필요한 공간에 쓰레기통을 비치하고 시민들은 적절하게 협조하는 것이 도시 관리와 시민 편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타협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장민권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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