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건강한 한국] “男과 女차이만 알아도 가정갈등의 원인 보이죠”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6.23 16:34

수정 2011.06.23 16:34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59·사진)은 인터뷰에 앞서 짤막한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남성과 여성 3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장면이다. 실험은 이들의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 서로 다른 질문을 동시에 들려준 뒤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간단한 실험이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남성들은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만 내놓은 반면 여성들은 두 가지 대답을 모두 제시했다.

"남자와 여자 정말 다르죠? 이것 하나만 봐도 갈등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어요."

공무원이던 김 소장은 8년 전 사설 상담소인 서울가정문제상담소를 세우고 본격적인 활동을 해왔다.
서울 남현동의 비탈지고 호젓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상담소에는 작은 간판조차 없지만 마음의 병을 가진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왜 이런 일을 하는가.

▲30대 중반부터 12년간 소외 이웃을 위한 공동체를 운영했다. 가정이 해체된 아동이나 장애우를 돌보는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처방보다 예방이 중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깨지기 전, 불화가 극대화되기 전에 도움을 줄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1997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것을 계기로 가정 문제에 대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소를 찾는 이들이 처한 현실은 대체로 어떤가.

▲암으로 치면 3기 정도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는 단계랄까. 폐렴 수준에서 오는 사람들은 10명 중 1명 꼴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벼운 감기 수준에서 상담소를 찾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하루 상담량은 얼마나 되나.

▲전화와 방문, 온라인 상담까지 합하면 하루에 15∼20건이다. 주목할 부분은 온라인 상담이다. 처음엔 회원가입 절차를 따로 둘까 했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우울해서 당장이라도 죽을 지경인데 무슨 정신으로 주민번호 치고 등록 절차를 밟겠나. 모든 글에는 비밀 번호를 설정해서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고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가.

▲직접 상담소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직업이나 소득수준 등 사회적 위치가 높은 편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도 있다. 많이 배운 이들일수록 상담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한 시간에 10만원가량 되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민을 위한 상담 창구가 부족하다는 게 아쉬운 점인데 현실적으로 비용을 받지 않고 상담소를 운영하기는 어렵다. 딜레마다.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솔직히 주눅들지는 않는가.

▲처음엔 그랬다. 심리학과 교수를 앉혀놓고 남편과 부인의 심리에 대해 설명해줘야 하는 일도 종종 생기니까. 하지만 그들 역시 가정 문제로 괴로워하는 것은 똑같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존심 센 50∼60대 남성들도 펑펑 운다. 그럴 때면 '도움이 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상담을 처음 시작하던 때와 지금, 가정 문제 경향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통상 가정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존재는 주로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 등 남성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도 문제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외도가 늘었고 폭력을 휘두르는 여성도 많아졌다. 여자들이 희생만을 강요받던 전통 여성상을 거부하면서 이에 반감을 가진 남편과 아들의 하소연도 늘고 있다.

―가정 문제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아직은 제왕적으로 군림하려는 아버지, 남편이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 다음은 경제적인 부분인데 배우자의 무능함도 문제지만 반대의 상황도 사실 심각하다. 돈을 잘 버는 남편이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 배우자는 숨도 못 쉴 만큼 무서워하면서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심리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이다.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정 문제라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나.

▲모든 인간은 자아실현 경향이 있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원인과 해결법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혼이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도 결국 이혼하지 못하고 고통의 굴레 속에 사는 것은 용기가 없거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고 현실적인 조언을 주는 것이다.

―살기 싫을 정도로 불화가 심하다면 결국 이혼이 답인가.

▲많은 사례를 접하다 보면 10명 중 2∼3명은 이혼하는 게 나을 때가 많다.그럼에도 대개의 이혼 결심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다. 이혼 이후의 삶, 해결해야 할 문제 등을 세세하게 알려주면 많은 이가 이혼 결정을 접는다. 반면 이혼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부부의 불화가 자식들에게 이미 큰 영향을 미쳤을때가 그렇다. 그럴 때엔 '이혼할 자격이 없다'고 따끔하게 말한다.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싸우고 헤어진다. 화목함엔 법칙도 비결도 없는 것인가.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반갑다는 뜻이고 고양이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싸우자는 뜻이다.
사람도 그렇다. 저마다 마음꼴, 말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은 반복된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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