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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북] ‘아둔한 실수’ 기업성패 좌우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2.05 16:31

수정 2014.11.04 15:47



■초난감 기업의 조건(릭 채프먼/에이콘)

아타리, DEC, IBM, 라니어, 왕, 제록스…. 지난 1982년 경영학자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만이 ‘초우량 기업의 조건’에서 초우량 기업으로 손꼽았던 회사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 기업의 운명은 어떤가. IBM과 제록스를 제외하고는 추락하거나 망가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업 경영을 지배하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초우량 기업을 일궜다면 이들 회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 초우량 기업은 없었던 것이고, 어떤 기업이든 실수를 저지르면 초우량 기업이 아니라 초난감 기업이 되고 마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프트 레터’의 편집자 릭 채프먼은 IBM에서 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 이르기까지 초우량 기업을 망친 최악의 마케팅 사례를 모은 ‘초난감 기업의 조건’(에이콘)을 펴냈다. 이 책은 기술 마케팅 재앙을 다룬 역사서로서 초우량 첨단 기업이 지난 20년 동안 저질러온 마케팅 실수를 분석한 후 어떻게 이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사례 1. 웹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는 익스플로러 보다 성능 면에서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넷스케이프 사는 기존 코드를 개선하는 대신 브라우저를 새로 짜겠다는 기념비적(?)인 결정으로 여러 해를 낭비했다. 그동안 시장 점유율은 90%에서 4%로 곤두박질쳤고,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는 프로그래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고, 경영진도 코드를 다시 짜겠다는 결정이 왜 나쁜지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초난감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사례 2. 한때 워드프로세싱 시장을 지배했던 워드스타 제조업체이자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 중 하나였던 마이크로프로. 최고경영자 루빈스타인이 워드스타 개발 팀과 싸움을 벌이면서 개발 팀은 퇴사하거나 해고당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프로는 워드스타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아야 할 시기에 제품을 내놓을 능력을 잃어버렸다. 1984년과 85년에도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지 못한 마이크로프로는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AT&T가 백기사로 등장했지만, 끝내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저자는 “첨단 기술회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소가 하나 드러난다. 바로 초난감한 아둔함이다. 성공한 회사는 경쟁사보다 덜 초난감하다”고 지적했다.

치명적이고도 초난감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유일하다. 물론 최근 윈도 비스타를 출시하면서 포지셔닝의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지금까지 기록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실수는 ‘춤추는 종이 클립’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실수는 치명적이지도 않았고 그저 애교로 봐줄만 했다. 고객들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실컷 비웃어주고 나서는 도우미 기능을 꺼버리는 정도의 실수였을 뿐이다.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미에 불과하던 시절, 거대한 코끼리였던 IBM은 초난감 실수를 여러 번 되풀이 했다. IBM은 개인용 PC를 출시하면서 ‘PC 하드웨어 표준’이라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수많은 제조업체로부터 표준 부품을 사서 최신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소비자는 편리해졌지만 IBM이 이때 하드웨어 표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IT기업들이 지금까지도 IBM에 예속돼 로열티를 지불하며 질질 끌려다니고 있을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IBM은 1987년 PS/2 계열을 내놓으면서 PC표준을 모두 거둬들여 가둬버리려고 시도했다. IBM은 ‘품질 통제’라는 미명 아래 하드웨어 명세를 철저하게 보호했다. 그러나 PS/2에 쏟아 부은 IBM의 노력은 완벽한 실패였다. 시장 환경이 예전과는 다르게 전개된 것이다.

릭 채프먼은 첨단 기업들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첨단 기업 대부분은 첨단 기술 시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권세를 누리는 일이 매우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실패하면 곧바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따라서 다른 기업의 과거 실패를 면밀하게 분석해 아둔함에 빠지지 않는 게 초우량 기업이 되는 지름길이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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