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한류, 말잔치인가.. 성장동력인가] (1) 한류? 그게 뭐죠? 한국엔 쇼핑하러 왔어요

박소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27 17:14

수정 2014.10.24 21:29

[한류, 말잔치인가.. 성장동력인가] (1) 한류? 그게 뭐죠? 한국엔 쇼핑하러 왔어요

1997년 한국 드라마의 중국 흥행을 기점으로 형성된 '한류'가 17년째 이어오고 있다.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서 형성됐던 한류가 정부 정책의 반열에 오르면서 관련 예산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 반한류 분위기가 형성되는가 하면 한류에 대한 과학적·현실적 진단과 평가보다는 '문화대국'이라는 이념에 휩쓸리는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한류를 의식적으로 고양하려는 정책들이 예산과 국력의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한류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장기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려면 '이성적인 한류 바라보기'는 필수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국내외 한류 신드롬의 현황과 문제점을 8회에 걸쳐 진단한다.


"한류요? 들어봤죠. K-팝(pop) 좋아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한국에 온 건 아닙니다. 그냥 가깝고 쇼핑하기 좋다고 해서 왔어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장량(29.여)의 말이다.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는 그는 연휴를 맞아 남자친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장량은 "상하이에서 한국은 한류보다는 쇼핑 천국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와 K팝 열풍이 세계 대중문화의 한 흐름이 됐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 데 한류가 기여하면서 최근 관광객 증가의 원인을 한류에서 찾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부 주도의 한류 정책이 강화되면서 한류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강조되고 있다.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결과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광은 한류의 효과가 직접 나타날 수 있는 분야다. 정부는 한류가 관광수지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탑재한 '매력국가'의 길목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직접 길거리에서 관광객들을 만나 보니 한류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부터 롯데백화점, 동대문까지 한류 관광객이 몰린다는 거리에 나가 외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인터뷰 대상도 한류에 대해 관심을 가질 법한 20대와 여성, 아시아계 인물들을 주로 선택했지만 이들의 대체적 반응은 "한류는 들어봤다 그러나 여행과는 상관없다"였다.

한류 스타를 보겠다거나 한국 드라마 촬영지가 관광목적인 관광객은 1명에 불과했다. 거의 대부분은 "한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관광지로 선택했다"고 답변했다.

의외의 결과였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 언론의 기자가 한류에 대해 묻는다면 예의상 호의적인 답변을 해줄 수 있고, 이 경우 진실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중국 대학생 황청(20·여)은 한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다"면서 "그냥 거리가 가깝고 연휴기간을 맞아 갈 만한 곳을 찾던 중 물가가 싸기도 하고 그래서 왔다"고 말했다.

[한류, 말잔치인가.. 성장동력인가] (1) 한류? 그게 뭐죠? 한국엔 쇼핑하러 왔어요


실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사업여행 포함)의 체류일정은 3~5일이 대부분이다. 한류 분위기가 높은 아시아권 관광객이 4일 내외의 짧은 해외여행을 계획할 경우 물가는 싸지만 제품과 서비스의 질이 낮은 동남아, 물가가 비싼 일본, 그리고 두 지역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한국 등을 선택지에 올려 놓고 장단점을 가려 결정한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가보지 않은 곳을 찾는 것도 일반적이다.

서울 무교동 서울파이낸스센터(SFC) 뒷길을 산책 중이던 수잔(40대·여·싱가포르) 부부도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한류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한류가 여행지로 한국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들은 "우리가 가수를 보러 오거나 드라마에 나오는 곳을 가려고 온 건 아니다"라면서 "휴가를 맞아 여행지를 고르면서, 이번엔 그동안 안 가본 나라인 한국에 가보기로 결정했을 뿐"이라고 했다. 휴가기간 짧은 해외여행을 즐긴다는 수잔 부부는 이미 인근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가봤기 때문에 이번이 한국 차례였다고 덧붙였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진정한 '한류 관광객'을 만나기 어려웠다.

젊은 관광객들이 몰린다는 동대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마주친 20대 여성에게서 한류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한국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레이사 엘리오노라(26)와 안젤라 유피트야(23)는 청담동 한류거리를 걷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청담동 SM, JYP, CUBE 등을 성지순례하듯 돌았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선 한국 가수에 대한 인기가 폭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드라마 특별전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한국 관광이 곧 한류 관광을 의미하는 걸까. 지난 22일 열린 '한국관광 브랜드 선포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난해 외래관광객이 12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성장했다. 신규 관광브랜드를 통해 관광콘텐츠를 보강, 한류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우회적 표현이지만 한류를 외래 관광객 증가의 1등 공신으로 꼽은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관광업계 분위기는 좋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127만3627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0.3% 증가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43.8%나 신장해 1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은 한국 드라마와 K팝 스타들의 인기가 폭발적이라고 알려진 대표 지역이다.

1인 기준으로 이들이 한국에서 쓰는 돈도 훨씬 많아졌다. 이 기간 한국 백화점에서 중국인이 쓴 돈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방한 홍콩인도 57.4% 증가했다.

이렇듯 중국·홍콩 등 중화권 관광객이 늘어난 배경에 대해 정부와 관광 리서치 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기관들은 그 이유를 '한류'로 요약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은 이러한 관광객 증가가 한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 문체부도 '한류 체험을 통한 한국 관광 감동 제공'을 올해 15대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드라마나 K팝 스타들을 내세운 이벤트를 관광과 연결시킨 한류 관광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한 관광객의 증가가 과연 '한류'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정부와 유관기관 관계자들의 분석과 길거리에 만난 관광객들의 말에는 큰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국제관광연구센터 최경은 부연구위원은 "한류의 영향에 대한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나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한류가 관광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특수적 연계(specific linkage)와 일반적 연계(general linkage)로 나뉜다. 특수적 연계에는 직접 K팝 가수의 공연을 보고,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최 부연구위원은 "한국을 선택한 이유로 쇼핑이나 미식 탐방이 꼽혔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이란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관광지로 부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재 특파원 최경환 안승현 박소연 김용훈 연지안 조지민 김유진 기자

■외국인 관광객, 왜 한국 택했나

'한국 관광=한류 관광.'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증가를 한류와 직접 연관 지어 거론하는 것은 하나의 '관례'로 굳어졌다. 정부 부처 관계자나 한류 관련 기관 및 단체들에서는 흔히 한류 관광객이라는 말을 외래관광객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관련 통계를 분석해 보면 한국 관광과 한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내놓은 '2013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방한하는 외래 관광객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은 1218만명으로 전년 대비 약 10% 늘었고, 10년 전에 비해선 100% 이상 증가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시트립'도 올해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 수가 56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 상반기(1~6월)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67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8% 증가했고, 홍콩 관광객 수는 26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의 방한 이유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류 열풍과 방한 관광객 증가 간 상관관계가 어색해 보인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3분의 2 가까이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로 '쇼핑'(61.0%.중복응답)을 꼽았다. 쇼핑은 2011년 이래로 줄곧 60%가 넘는 응답률을 보이며 부동의 1위 항목을 차지해왔다. 2위는 음식.미식 탐방(41.3%)이었다. 이 항목들은 한국 관광객이 홍콩을 찾는 이유 순위와 동일하다.



한류와 관광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오히려 '세련된 문화' 때문에 한국을 찾았다는 답변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이유를 꼽은 사람은 중복답변을 포함해 15%밖에 되지 않는다.
1순위로 한국의 세련된 문화가 관광의 이유라고 답변한 경우는 전체의 4%에 불과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