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책vs책] 여자 없는 남자들 vs 다른 남자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11 17:03

수정 2014.09.11 17:03

[책vs책] 여자 없는 남자들 vs 다른 남자

[책vs책] 여자 없는 남자들 vs 다른 남자

남자. 포부와 꿈으로 점철된 젊은 날을 지나 점차 현실에 순응하고 때로는 좌절한다. 자신의 이름 석자보다는 가장이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나이와 함께 생이 점차 마모된다. 그런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퇴근 후 마시는 소주 한잔뿐이라면 너무나 쓸쓸하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요즘은 서점에 나가보면 유독 '남자'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다. 글로, 책으로 남자들을 위로하려는 시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 펴냄)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동안 방황하는 청춘을 상징하던 하루키 공식의 틀을 깬 파격적 설정이다.
그가 9년 만에 내놓는 단편집인 이 책은 나이가 지긋한 생활형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다소 무거운 소재와 분위기가 압도적이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하루키 특유의 문체와 구성으로 엮여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진다.

어느 날 몇 년 전 사귀었던 여자의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 그리고 연극배우이자 얼마 전 아내를 잃은 주인공이 죽은 아내와 내통한 남자들을 만나고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알고자 하면서 시작되는 '드라이브 마이 카', 많은 여성과 만나지만 진실한 마음이 없는 무미건조한 만남을 지속하던 성형외과 의사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상사병에까지 이르는 비극적인 과정을 그린 '독립기관' 등 일곱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vs책] 여자 없는 남자들 vs 다른 남자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여자가 사라지게 되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한없이 가련하고 위태로운 그 존재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처연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꼭꼭 숨기고 무표정의 가면을 쓰는 법부터 배운다. 연애나 결혼 등 여자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제는 하향곡선만 남은 것 같은 공허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을 대부분의 남자들은 알 수가 없다. 이 소설이 일본에서 예약판매로만 30만부의 판매를 기록하고, 한국에서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하루키가 내놓는 실로 오랜만의 신작이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러한 진짜 남자들의 마음을 소설 속에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가 백영옥이 2013년 2월부터 10개월간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다른 남자'(위즈덤경향 펴냄)는 '색다르게 인생을 정주행하는 남자들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말의 '다르다'는 여러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영어로 치자면 'other'와 'different'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르다'와 '나와는 무언가 다르다', 이 미묘하고도 확실한 차이 사이를 줄타기하듯 넘나들며 책은 시작된다. 인터뷰어 백영옥은 마치 서천석, 강신주, 김창완, 김영하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은 누구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예술계, 학계, 경제계를 비롯해 종교계까지도 파고든 다방면의 남자들과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왜 이 남자들은 다른 걸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수박 겉핥기식 인터뷰, 희망과 바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까지의 그 남자들을 만든, 보다 '다른 일들'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면서 그들의 일상, 고뇌, 슬픔까지 다룬다. 그들의 개인적 고민과 갈등은 곧 사회와 문화의 이슈가 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들은 결국 우리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퍽퍽한 닭 가슴살 같은 남자들의 일상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삶의 속살은 아직 부드럽고 달콤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이 남자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잊지 말고 이 책들을 한번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나문희 교보문고 MD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