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큐레이터 추천 핫 전시] 강영민의 사랑하면 진다전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5.27 09:01

수정 2014.11.07 03:26

줌 렌즈를 밀고 당기다 보면 사물이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이 지점에서 렌즈를 더 밀거나 당기면 사물의 형체는 흐릿해지다가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표현하고자 할 때, 그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장 긴장감 넘치는 지점에서 작품이 만들어진다.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슬픔이라고 하는 감정 상태와 일정한 거리에서 그것을 다루어야 하는데, 슬픔이라고 하는 대상에 감정적으로 밀착되어 있을 경우 대부분 신파로 전락한다. 부족한 거리 조정(under-distancing) 탓이다. 반대로 초과한 거리 조정(over-distancing)의 경우 수박 겉?Y기 식의 피상적 표현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영민의 ‘사랑하면 진다’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의인화된 하트’를 사용하여 시종 사랑의 행위에서 빚어지는 아픔을 우울한 블루 톤으로 담아내고 있다.
화폭에 담긴 사랑의 아픔은 특별한 예술적 장치를 거치지 않은 그야말로 날것의 감정이다. 상실감에 흐느껴 울다가 엉망으로 취하고, 그러다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는 누구나 한 번쯤 일기에 담아놓았을 법한 사랑과 실연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이다.

하트라고 하는 기호는 그것이 비록 지속성과 양방향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진실하며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하트 군은 그 사랑으로 인해 외롭고 우울하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사랑이란 감정의 형태가 그런 것처럼 그것으로 인해 오는 아픔 또한 매우 거칠고 격정적이다.

숨길 수도 드러낼 수도 없는 이 난감한 감정을 작가는 여과 없이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 말 그대로라면 또 하나의 신파가 탄생하는 순간이지만, 작가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이를 극복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마디로 눙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깔끔하게 디자인화 된 캐릭터를 사용해 밝고 가벼운 인상을 주는 일반적인 팝아트와 달리 거칠고 기교 없는 투박한 붓질로 동시대인의 보편적 삶과 사랑의 내면을 담아내는 것은 작가의 존재감을 한층 강화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불안과 고독으로 가득한 사랑의 감정은 ‘사랑의 뒤통수는 고통’이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랑의 이면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정해종 갤러리 터치 관장

사진설명=Wake Up! 72x62cm acrylic on canva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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