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지 3개월만에 주연으로 무대에 선 배우 주원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0.15 08:45

수정 2009.10.15 08:45


미녀가 이슬만 먹고 산다면 꽃미남은 대체 뭘 먹을까.

“물망초차 차가운 걸로 주세요”

배우 주원(23)은 이름조차 생소한 음료를 주문했다. 185㎝의 훤칠한 키, 주먹만한 얼굴의 신인배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딱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배우 강동원. 통통한 볼살만 빠지면 영락없는 강동원이다. 하지만 ‘리틀 강동원’으로만 기억되기엔 좀 억울하다. 6개월간의 침묵을 깨고 라이선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무대에 선 그가 아닌가.

뮤지컬 배우 사관학교로 꼽히는 계원예고에 입학한 그는 학창시절 교내 소극장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등록금이라도 벌자는 심산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무대 장치, 조명기기, 음향기기 다루는 법까지 익히게 됐다.
그는 ‘배우가 되지 않았으면 무대 스태프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데뷔작은 2년전 공연한 뮤지컬 ‘알타보이즈’였다. 첫 오디션 때만해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퇴짜를 맞았지만 정확히 한달 보름이 지난 뒤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꽃미남들의 통과의례인 뮤지컬 ‘그리스’에 이어 브로드웨이 화제작 ‘스프링 어웨이크닝’까지, 이만하면 남들이 탐낼만한 필모그라피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언더스터디(주연 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신 배역을 맡는 배우)로 뽑혔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어요. 정말 잘해보겠다, 뭔가 보여주겠다하는 의욕으로 가득 찼거든요.”

언더스터디의 일상도 정식 배우와 다를게 없었다. 3개월간 하루종일 노래하고 연기 연습을 했다.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동료 배우들은 긴장하면서도 설레임에 들떴다. 하지만 그에겐 끝없는 훈련 기간만이 주어졌다.

“그래도 ‘한두번쯤은 무대에 설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오래 기다리다보니 어느 순간 기운이 빠지더라구요. 연습해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의기소침해졌죠.”

그리고 지난 6일. 꿈같은 첫무대가 펼쳐졌다. 상대 배우들은 이미 3개월간 공연을 했기에 그는 외로운 긴장감에 떨어야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보여주려했건만 쉽지 않았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노골적인 정사 장면을 묘사하는데 영 어정쩡하더란다. 상대 여배우에게 몸이 닿을까 전전긍긍했으니 자연스러울리가 없었다.

“야한 동영상을 보며 나름대로 연구했는데도 제 모습이 꼭 땅바닥과 씨름하는 것 같았나봐요. 손 동작 하나, 미묘한 몸놀림까지 가르침을 받아야했죠.”

그에게 가장 엄격한 코치는 다름아닌 어머니다. 강수연, 이미연, 장동건 등 국내 톱탤런트들의 분장사로 활약했던 어머니는 이미 9차례나 공연장을 찾았다. 한때에는 배우가 되겠다는 아들의 뜻에 반대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최고의 비평가이자 선생님이다.

공연이 있는 날은 오후 5시까지 극장에 도착해야 하지만 그는 18학점을 꽉 채워듣는 대학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그를 배우가 아닌 ‘잘생긴 남학생’쯤으로 생각한 여학생들이 용기를 내 연락처를 물어오는 일도 종종 있다. 친구들과 대학로를 누비며 군것질을 하고 수다를 떠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재미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신경도 안쓰는 외골수 성격을 고치기위해 일부러 더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어릴 땐 정말 얌전했는데 지금은 퍽 활달하죠. 제가 성장하고 변하는 과정을 무대에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알타보이즈’때만해도 저더러 ‘아기같다’고 표현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딱 사춘기 소년같다는 평을 듣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멋진 배우’ 이게 제 꿈이에요.”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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