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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35. 끝·터너 프라이즈와 아시아 아트 어워드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8.20 16:50

수정 2009.08.20 16:50

▲ 크리스 오필리의 '여자가 아니면 울지도 않는다'.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최초의 흑인 작가이자 1985년 하워드 호드킨 수상이래 처음으로 페인팅 작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암소와 송아지가 반이 갈라져 포르말린이 담긴 유리 상자 속에 갇혀 있고(데미안 허스트), 잡동사니가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헝클어진 침대(트레이시 에민), 코끼리 똥으로 그려진 여자 얼굴(크리스 오필리)이 전시장에 놓여 있다. 공포스럽고, 지저분하고, 엽기적이고, 비위가 상한다.

이런 작품들을 보고 2002년 영국의 문화부 장관 킴 하웰은 “이것이 영국이 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아티스트 작품이라면 영국의 미술은 길을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차갑고, 기계적이고, 개념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덧붙여 평론가 조너선 존스는 “여기 출품된 작품들은 하나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을 뿐이다.

첫 눈에는 쇼킹하게 보이지만 곧 지루한 아이디어를 표현했다는 것을 노출한다. 그러나 이 또한 그렇게 중요한 아이디어도 아니라는 것이 들통난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광고 콘셉트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누구도 그 아이디어를 쫓아가지 않는다. 쫓아갈 어떤 이유도 없다”며 신랄하게 비난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었다.

필자 역시 보고 있자면 속이 불편해지는 이런 오브제를 보고 미술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예스’다. 지구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가 배출한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대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터너 프라이즈가 뭐기에 사람들은 이처럼 엽기적인 오브제를 놀랄 만한 작품이라고 포장하고 칭송하는 것일까.

1984년 영국화가 윌리암 터너(1775∼1851)를 기리며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발견을 목표로 시작된 터너 프라이즈. 이 상은 첫해 말콤 몰리를 시작으로 길버트&조지, 토니 크래그, 리처드 롱, 애니시 카푸어, 안토니 곰리, 데미안 허스트, 크리스 오필리, 트레이스 에민 등 글로벌 슈퍼 스타를 낳으며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잡았다.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테이트 갤러리, 영국문화원, 헨리 무어 파운데이션, 뉴욕 모마, 아인트호벤 아베뮤지움, 헤이워드 갤러리, 스위스 쿤스트할레,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센터, 파리 카르티에 재단, 이콘 갤러리, 프리즈 매거진, 월간 아트 매거진, 데일리 텔레그래프,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인디펜던트, 옵서버, 파켓 매거진, 타임아웃 매거진 등 미술관과 학계, 문화재단, 언론사 등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처럼 국제적인 심사위원의 진보적인 시각과 실험적인 작품을 우선시 하는 철학을 지켜냈기에 각계의 반대와 비난의 포화 속에서도 새로운 담론을 낳으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 전통에 기반해서 영국 현대미술은 유럽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아트 프라이즈, 아트 어워드, 미술대상 등의 전시와 시상은 새로운 작가를 시장에 알리고 새로운 시각의 작품을 지원하며 역량 있는 작가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한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까지 매달려 터너 프라이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스캔들리즘이나 센세이셔널리즘에 기초한 것 만은 아니다. 미술을 산업으로 바라보았을 때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의 경쟁이다. 화랑, 미술관, 학계, 큐레이터, 평론가들의 국제적인 교류에 바탕을 둔 심사과정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고 그 자체로 상품이 된다.

▲ 데미안 허스트의 '갈라진 엄마와 아이'. 지난 1993년 포르말린으로 처리한 반으로 갈라진 암소와 송아지 사이를 관람객이 직접 지나가며 관람할 수 있었던 엽기적인 작품이다.

한국에도 이처럼 근사한 미술대상이 없을까. 미술과 관련한 상은 제법 된다. 중앙미술대전, 송은미술대상, 포스코 스틸 아트 어워드 등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은 해마다 발전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는 2010년 5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 ‘아시아 아트 어워드’가 기대된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미술전문가에서 뽑은 심사위원 15인과 60여명의 한국 큐레이터, 미술평론가들이 모여 세미나를 통해 아시아의 정체성과 아시아적 가치를 정립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40세 미만의 작가를 발굴한다는 프로젝트다. 아시아적 가치가 세계적인 가치가 될 수 있다며 야심 찬 포부를 밝힌 대안공간 루프의 서진석 대표를 만났다.

“대안성이란 언제나 변합니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대안에 대한 기준과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이 변해야지만 대안이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 미술지도는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종교·문화적으로 아시아가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 사이에서 균형 잡힌 가치를 제시해야 합니다. 서양이 아닌 우리 스스로 미술사를 써내려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행력뿐입니다.” 4∼5년 전부터 준비한 치밀함에서 묻어 나오는 자신감 찬 목소리다.

서진석 대표는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선택했고 심사위원 역시 국제적인 인물로 구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아시아 아트 어워드’ 수상자에게만 집중되어 흥미위주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각종 포럼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번 행사를 ‘아시아 아트 어워드&포럼’이라고 부른다. 미술의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곳은 국제시장이다. 그리고 이런 해외 진출을 앞당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로벌 시스템을 도입하는 일이다. ‘아시아 아트 어워드’는 이런 문맥 속에서 탄생되었다.

많은 미술애호가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아시아 아트 어워드’가 지켜나가야 할 몇 가지 기본조건이 있다. 첫째는 장르별 차별을 극복해야 하고, 둘째는 심사위원의 다변화, 다국가화를 유도해 아시아 작가를 뽑는데 지나치게 아시아 심사위원에 의존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고, 셋째 하나의 작품이 아닌 그 작가의 전시에 점수를 많이 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심사위원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 아트 어워드’ 역시 터너프라이즈와 마찬가지로 작품 선정과 심사위원 선정의 공정성 시비나 문화계·정계의 비판적인 목소리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담론을 만들어 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기료를 내지 못하고 집세를 내지 못해 집주인을 피해 다녔던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 듯이 전시장 구경 온 자장면 배달원의 후원금을 받으며 각오를 새롭게 하며 대중과의 소통에 열정을 쏟아 왔듯이 서진석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아트 어워드’가 순항하기를 바란다.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아시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모습을 드러낼 2010년 5월이 기다려진다.

■알림//지금까지 ‘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를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현대미술은 고집 센 물고기와 같습니다.

이제 이론이 아닌 실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물길을 알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현장에 뛰어들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의미 있는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과 문화를 수출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

/milklee@gmail.com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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