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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포커스] 인문학의 부흥 단국대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0 18:25

수정 2009.12.10 18:25



■“성 밖으로 나온 인문학 e-세상을 비추리”

‘오천년 민족문화의 빗장을 열다’ ‘민족문화 탐구의 나침반’ ‘사서집성(辭書集成) 문예부흥’….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에 뿌리를 둔 단국대가 장장 30년에 걸쳐 ‘한한대사전’을 편찬하자 나온 학계의 반응이다.

한학을 기본으로 한 전통 인문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자사전이 필수 도구다. 일본의 모로하시 데쓰지(1883∼1982)는 중국 유학 중 독자적인 한자-일본어 사전을 편찬키로 결심하고 32년이라는 시간을 들인 끝에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을 펴냈다. 이에 자극받은 대만은 정부기구인 국방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중국학술원이 실무작업을 맡아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을 10년 만에 완간했으며 중국 역시 국책사업으로 선정해 43개 대학과 연구소가 협력해 15년 만에 12권짜리 ‘한어대사전(漢語大辭典)’을 펴낸 바 있다.

당시 45세였던 단국대 장충식 총장(현 명예총장)은 이 같은 주변국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지난 1977년 국학계의 태두인 일석 이희승 선생을 삼고초려 끝에 동양학연구소 소장으로 초빙해와 편찬실을 구성하고 한학자들을 편찬위원으로 채용, 1978년 사전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일개 대학 연구소가 방대한 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재단마저 사업의 방대함을 들어 승인을 거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는가 하면 대학 재정 위기로 몇 번이나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는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 2008년 8월 사전 편찬에 착수한 지 30년 만에 16권짜리 세계 최대 규모의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선보였다. 일본의 ‘대한화사전’이 4만9000여자·39만 단어, 중국의 ‘한어대사전’이 2만3000여자·38만 단어, 대만의 ‘중문대사전’이 5만여자·40만 단어를 수록하고 있는 데 비해 단국대판 ‘한한대사전’은 5만5000자·45만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동양학연구소는 지난 1996년 우리 조상들이 창안해 우리나라에서만 쓰인 한자(182개 한자)와 한국식으로 쓰인 한자 어휘 8만4000 단어를 수록한 4권짜리 ‘한국한자어사전’을 펴낸 바 있다. 전 세계에서 누구도 흉내내거나 따라올 수 없는 한자사전을 우리 민족문화의 재단에 진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장호성 총장은 “대학의 힘으로는 벅찬 사업이었지만 지난 3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걸음씩 전진한 끝에 ‘한한대사전’을 편찬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전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으로 인문학의 부흥을 위해 다시 한번 ‘디지털 한한대사전’ 편찬에 도전하겠습니다”고 말한다.

춘부장인 장 명예총장이 159m, 53층 빌딩 높이의 ‘한한대사전’을 30년 만에 완간했다면 그의 뒤를 이은 장 총장은 이를 정보기술(IT)과 문화기술(CT)로 결합, 앞으로 4년 안에 ‘디지털 한한대사전’을 선보이겠다고 밝힌다. ‘디지털 한한대사전’은 IT·CT를 활용해 웹상에서 구현하기 때문에 방대한 분량의 책을 보관할 필요가 없는데다 검색이 편리한 게 장점이다. 특히 ‘디지털 한한대사전’이 일반에 공개될 경우 고전 국학자료의 해독에 필수적인 도구에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연계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초·중·고·대학교의 교육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국대는 이와 함께 2014년 완간을 목표로 최근 ‘몽한사전’ 편찬 작업에도 착수했다. ‘몽한사전’ 역시 ‘한한대사전’처럼 경제적 이익은 없지만 몽골과의 역사적 관계를 생각해볼 때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단국대 몽골연구소가 직접 나선 프로젝트다. 몽골연구소는 10만 단어를 수록한 세계 최대의 ‘몽한사전’이 완성되면 ‘한몽사전’과 ‘한·몽·영사전’도 잇따라 편찬할 계획이다.

단국대 CT특성화 계획에 따르면 동양학연구소의 ‘디지털 한한대사전’과 함께 석주선기념박물관, 율곡기념도서관, 퇴계기념도서관에 보관된 고문헌을 비롯해 역사학과·도예학과·국악과 등의 풍부한 예술적 자산도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문화유산으로 정리된다. 우선 국내 대학 박물관으로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고고·미술과 한국 전통복식 자료가 디지털 기술로 처리돼 학계에 연구자료로 제공된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장 총장이 시대 변화와 학문 연구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IT와 CT가 결합된 문화콘텐츠가 필수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단 덕분이다.

지난 4월 신축, 개관한 석주선기념박물관은 크게 고고·미술 유물관과 전통복식과 관련된 민속·복식 유물관으로 나뉘어 있다. 고고·미술 유물관에는 단국대 역사학과가 전국 각 지역을 나누어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한 끝에 수집한 유물 4만여점이 소장돼 있으며 민속·복식 유물관에는 한국복식사 연구의 선구자인 고 석주선 박사가 평생 수집한 유물 3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재 박물관에는 1978년 충북 단양에서 발굴한 신라 진흥왕 때의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와 1979년 충북 중원군에서 발굴한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등의 복제품을 비롯해 석기, 토기, 기와, 전, 조선시대가구, 문방구 등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정영호 석주선기념박물관장은 “전시, 교육, 연구를 통한 종합적인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국제적인 대학박물관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의 ‘디지털 한한대사전’과 석주선기념박물관의 ‘e-뮤지엄’ 프로젝트는 실용학문에 점차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인문학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사진설명=단국대의 상징인 '곰' 조각상 앞에서 학생들이 초겨울 추위를 뚫고 파이팅을 외치며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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