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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한국은행이 동전을 겁내는 까닭은?

김주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2.05 16:45

수정 2013.02.05 16:45

돈에도 놀고 먹는 돈이 있다. 10원짜리 동전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게으른 돈이다. 어지간해선 바깥 출입을 꺼려 한다. 책상 서랍과 저금통이 그들의 놀이터다. 어쩌다 외출했다 하면 감감 무소식이다.
한국은행 본가로 되돌아오는 환수율은 5%도 채 안 되는 이유다. 이러니 주요 수요처인 대형 마트와 동네 소매점과 숨바꼭질하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몸값은 액면가보다 세 배 이상 비싸다. 알루미늄 재질에 구리를 입혀 35원의 제조비용이 든 까닭이다. 찍어 낼수록 손해다. 교환기능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데 비용만 축내는 애물단지인 셈이다. 만일 소재의 질을 떨어뜨린 같은 액면가의 동전이 등장했다면 그레셤의 법칙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할 뻔도 했다.

그럼에도 매년 2억개씩 찍어내야 하는 이유는 또 뭘까? 물가를 자극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갑자기 100원 단위로 건너뛰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건 불문가지다. 10원짜리 동전은 물가 앙등을 억누르는 진정제에 다름없다. 유통업계에선 효자 동전으로 통한다. '990원' 숫자 마케팅 기법을 써먹을 수 있어서다. 동전의 최소 단위가 100원으로 대체될 경우 1000원 이하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치는 900원뿐이다. 90원이나 손해나는 구조다. 눈대중으로도 990원이나 900원은 가격 체감도가 900원대이긴 매한가지다. 10원짜리 동전의 위력이 아닐 수 없다.

잠자는 돈은 국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외국에서 되돌아오는 우리나라 헌돈 때문에 한국은행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국인들이 화폐교환 창구에 두둑한 가방을 들이밀면 어김없이 한바탕 소동이 벌어져서다. 낡고 찢긴 구권, 신권, 동전 가릴 것 없이 쏟아진다. 일화 한 토막이 실감난다. 한 번은 동전이 워낙 많아 다른 팀 직원까지 열두명이 가방에 매달려야 했다. 장장 3시간30분 만에 6857만원의 새 돈을 바꿔줄 수 있었다. 창구 업무가 마비된 것은 물론이다.

이역만리에서 미아가 된 사연도 가지가지다. 유명 관광지의 분수대와 자율요금제 박물관 등지에서 발견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십수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으니 이미 구권이 된 지폐가 수두룩하다. 국내에서 왕성한 신용 창출을 해야 할 화폐가 외국에서 영문도 모른 채 허송세월을 보낸 꼴이다.
지폐의 경우 훼손 정도가 심해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교환한 만큼 새로 찍어내야 하니 국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해외 나갈 때 우리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애국하는 첫걸음이다.

joosik@fnnews.com 김주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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