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은행장 수난시대

양승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15 17:05

수정 2014.10.28 07:58

은행원들에게 진드기처럼 따라다니는 직업병 중 하나는 돈독(毒)이다. 업무상 지폐와 동전을 만지는 일이 잦다 보니 여기서 생기는 일종의 알레르기 질환이다. 돈독이 오르면 손끝이 갈라지고 손바닥이 짓물러져 물건을 집거나 식사를 할 때 고통스럽다. 지폐분류 작업을 맡았던 은행원이라면 습진은 물론 지폐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등의 영향으로 호흡기질환까지 달고 살았던 이들이 적지 않다. 재물을 끔찍이 여기면서도 돈을 다룰 때는 함부로 대하는 일반인들의 습관이 안겨 준 고통이다.

한국은행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서도 시중에 유통 중인 지폐의 14%가 손상 및 오염 정도가 심해 사용하기 부적합한 것으로 판정 났을 정도면 돈독의 폐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적게 잡아도 일만명 이상의 행원과 은행을 대표하는 은행장들의 스타트 라인은 은행 창구다.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실무 경험을 쌓지 않고는 은행장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얘기다. 관치금융이 판을 쳤던 시대에도 국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에서는 초짜 뱅커부터 시작한 거목들이 은행장 자리를 꿰찼다. 하나뿐인 자리를 놓고 정치권 등에 선을 대는 힘 겨루기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은 돈독에 시달려 본 사람이어야 은행장이 될 수 있었다. 여성 최초로 지난해 말 은행장 자리에 오른 권선주 기업은행장 역시 1978년 입행 후 35년간을 외길로만 달리며 산전수전 다 겪은 스타 뱅커였다.

은행장들의 수난시대다. 고객정보 유출사고와 내부 횡령 스캔들에 이어 거액 사기피해까지 겹치면서 은행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감독 당국에서는 서릿발 같은 불호령이 하루가 멀다하고 내려오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고객들대로 돈을 믿고 맡길 곳이 없다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표정이다.

은행장들은 금융계 최고의 파워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15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모든 시중은행장을 소집했다. 잇따른 금융사고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는 동시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군기잡기다. 은행장들의 고개 숙인 사진이 또 한 차례 독자들을 찾아가겠지만 이제는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건, 사고에 치여 죄인 표정을 짓는 은행장보다 자랑스러운 뉴스를 전하는 당당하고 멋진 은행장의 사진을 정말로 보고 싶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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