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겁쟁이 선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17 17:09

수정 2014.10.28 06:40

영국 중부 리치필드의 비콘공원엔 '영웅' 에드워드 존 스미스(1850~1912년)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 스미스는 타이태닉호의 선장이다. 15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타이태닉호 사고는 역사상 최악의 해상참사로 기록된다. 호화유람선 타이태닉은 1912년 4월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가는 길이었다. 출항 나흘째 되는 날 타이태닉은 거대한 얼음덩어리와 충돌했다. 4만6000t급 세계 최대 유람선이 침몰하는 데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제때 빙산을 발견하지 못해 배가 충돌한 것은 전적으로 스미스 선장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영국인들은 스미스 선장을 영웅으로 추모한다. 그가 선장답게 배와 운명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은 스미스 선장이 조타실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증언한다. 당시 언론은 스미스 선장이 마지막 순간 선원들에게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 boys, be British)"고 외쳤다고 전한다.

2011년 1월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은 배와 다리, 왼팔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우리 청해부대가 구출작전을 펴자 소말리아 해적들이 석 선장에게 보복 총질을 했다. 석 선장이 배 엔진오일에 물을 타고 일부러 지그재그로 운행하는 등 용감하게 해적들에 맞섰기 때문이다. 급히 국내로 후송된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역경을 딛고 280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정부는 '아덴만의 영웅' 석 선장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2012년 초 이탈리아에선 'Vada a bordo, CAZZO!'라고 쓰인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다. 순화해서 풀면 "배로 돌아가, 이 썩을 놈아"라는 뜻이다. '썩을 놈'은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를 버리고 도망친 프란체스코 셰티노 선장이다. 호통을 친 이는 그레고리오 데 팔코 해안경비대장이다. 팔코 대장은 구명정에 오른 겁쟁이 셰티노에게 즉시 배로 돌아가 승객들을 보살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셰티노는 말만 "그러겠다"고 했을 뿐 구명정이 육지에 닿자마자 택시를 타고 내빼기에 바빴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17일 "승객과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다. 면목이 없다"고 사죄했다. 너무 늦었다. 선장을 비롯해 세월호 승무원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어린 학생들을 내버려둔 채 제 한 몸 탈출에 급급했다. 가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진도 앞바다에 제2의 석해균은 없었다.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는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불행하지만 아직 기본이 덜 된 나라,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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