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 MK택시 오너의 요정 순례

양승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3 17:15

수정 2014.10.28 04:30

[양승득 칼럼] MK택시 오너의 요정 순례

아오키(靑木)상 어떻습니까? "아, MK택시의 그 사람 말입니까? 별로예요. 어떤 때는 벌금 맞은 것까지 기사들한테 물린다고 하던데."

수년 전 교토 출장 길에서 잡아 탄 한 택시 안. MK택시의 유봉식 회장(일본명 아오키 사다오)에 대한 평판을 물은 질문에 돌아온 기사의 답은 뜻밖이었다. 기사 서비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택시, 외국 국가원수도 이용한다는 택시를 만들어 숱한 화제를 뿌린 스타 기업인을 비난하다니….

그랬다. 경쟁업체들의 시각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혼재해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일월드컵 대회를 두어달 앞두고 가진 필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택시들의 문제는 사장에게 있습니다. 택시회사 사장 중 자가용 대신 택시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택시를 직접 몰아 보고 뒷좌석 승객 자리에도 앉아 보면 보입니다.
차량이 어디가 안 좋은지, 승객이 뭣 때문에 불편할지가 말입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한 일본 일간지에 실린 MK택시의 화제 기사에는 그가 밤마다 교토의 요정을 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술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자기 회사 택시를 애용해 달라는 명함을 뿌리러 다닌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정문이 아니라 뒷문으로 드나들며 요정 주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설명과 함께. 유 회장의 성공 리더십은 신상필벌이 요체다. 기사 처우와 복리후생에는 관대하지만 주의소홀로 사고를 내거나 법규를 어겨 벌금을 맞았을 때는 냉정하리만치 엄하다. 그러나 영업 측면에서 본 그의 리더십은 현장제일주의, 직원들과의 동고동락이다. 회장이 운전석에 앉아 차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밤늦도록 발품을 팔고 다니는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고위 지휘관이 전투 일선을 누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말 세상을 뜬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사령관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메마른 이 땅을 촉촉이 적시고 갔다. 전우들 곁에 묻히겠다며 장군 묘역이 아니라 일반 사병 묘역에서 잠든 그의 골육지정(骨肉之情) 부하 사랑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수없이 죽음을 넘나든 그가 보여준 영원한 전우애다.

한국 기업들은 단합대회를 자주 치른다. 경기가 좋을 땐 더 잘해 보자고, 나쁠 땐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뜻에서다. 이런 자리에는 회사 고위층도 곧잘 얼굴을 보인다. 그리고 행사 끝 무렵에는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공동운명체적 구호가 공식처럼 따라붙는다.

상장기업 등기임원 중 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들의 내역이 지난달 공개돼 반짝 화제가 됐다.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았지만 회사 금고를 살찌운 이들에게 푸짐한 포상이 돌아가는 것을 시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달 중순에는 빠듯한 살림의 비상장 계열사에서 거액의 뭉칫돈을 배당금으로 챙긴 대주주들의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과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 ㈜팔도의 윤호중 대주주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가 적자를 내건 말건, 빚더미에 올라 앉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한술 더 떠 연봉 공개 대상 기업들에서는 대주주들이 회장, 사장의 자리를 내놓고 줄줄이 등기임원에서 빠지고 있다. 적을 향해 돌격하라며 자신은 뒤로 빠지고, 사병들은 굶주려도 자신은 배불리 먹어야겠다는 용렬한 지휘관을 연상케 한다.

중국의 고대사상가 순자(荀子)는 용병의 핵심을 장수와 병사들이 한마음이 되는 데 있다고 가르쳤다. 임진왜란 중 불패 신화를 남긴 이순신 장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듯 병사들이 장군을 받들고, 무적의 강군으로 거듭나 왜군을 벌벌 떨게 만든 힘도 위아래가 하나됨에 있었다.

최고경영자(CEO)가 양식(良識)과 양식(糧食)을 맞바꾸는 회사가 백년기업을 꿈꾼다면 이는 탐욕이다.
가라앉는 배와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튄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은 파렴치한 행위로 나라 얼굴에 흙탕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남이야 어찌 되건 나만 살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기업들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놓고 말을 안해도 직원들은 위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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